나보다 먼저 책을 펼쳐든 딸아이의가 '엄마 뒤주가 뭐야?'라며 묻기에 옛날에 쓰던 쌀통이라고 대답해주니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또 배비장이며 사도세자며 이것저것 질문을 해댄다.

할아버지의 뒤주'란 제목에서 할아버지의 오래된 뒤주에 얽힌 추억이야기쯤으로 짐작만 하고 있던 내게 딸아이의 질문은 점점 궁금증을 증폭시켜주었다.  딸아이가 책을 내려놓기 바쁘게 궁금증 해결을 위해 부지런히 읽어내려가는 동안 딸아이의 뜬금없던 질문들이 이해되었다.

할아버지의 뒤주는 바로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었다. 햐~ 정말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쌀을 넣어두던 뒤주가 할아버지가 가고픈 아니 꼭 가야만하는 과거로 데려다주는 비밀타임머신이었던 것이다.   

왜 하필 쌀을 넣어두던 뒤주가???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가 돌이키고픈 순간, 바로 그곳에 있었던 중요한 물건이었기때문이었다.

 SF공상과학 이야기에 등장하는 최첨단 장비가 갖춰진 세련된 모습이 아닌 쌀냄새가 풀풀~ 풍겨날 것 같은 토종 타임머신 뒤주에 얽힌 할아버지와 민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오래전 가슴아픈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뒤주를 통해 바로 그 순간을 돌이키고픈 시간으로 끊임없는 과거로의 비밀스런 여행을 떠나던 할아버지는 손자 민제를 통해 오랜 염원을 이루게 된다. 그후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온 뒤주......

 마침내 제 역할을 다한듯 목적(?)을 이룬뒤 신비한 기능을 잃어버린 뒤주의 모습에 어릴적 할머니댁 마루 한귀퉁이에 놓여있던 뒤주가 떠올랐다. 녹이 슨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들어올리기 위해 뒤주위에 놓여있던 큼지막한 호박이며 자질구레한 것들을 내려놓고는 하던 기억......

 이미 오래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시골 작은아버지댁에는 아직도 그 뒤주가 여전히 남아있다. 다음에 시골에 가면 딸아이에게 우리 고유의 쌀통이었던 뒤주를 보여주며 혹시나 타임머신인지 뒤주속으로 들어가봐야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