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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지난 8월 28일 수요일, 홍대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28>의 베스트셀러 진입과 북 사운드트랙 발매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은 <28>의 진한 감동과 여운을 안고 온 200여명의 독자들로 가득했다.

↑ 소설 <28> 북콘서트 홍대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

소설 <28>의 첫 페이지를 낭독하는 것으로 북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1부는 소설 <28>의 북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실력파 인디뮤지션 ‘이지에프엠’, ‘트루베르’, ‘리터’의 열정적인 무대로 꾸며졌다. <28> 북 사운드트랙은 주요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접하다가 책에서는 처음이라 화제가 됐다.

↑ 실력파 인디뮤지션 리터의 공연

2부는 소설을 집필한 정유정 작가와 북콘서트의 사회를 맡은 방송인 정선희 씨가 함께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정선희는 “라디오를 하면서 게스트가 알아서 맛깔나게 얘기해줄 때가 제일 편한데, 정유정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한다”며 라디오에서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정선희의 유쾌하고 탁월한 진행으로 대화 형식의 편안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 정유정 작가와 사회를 맡은 방송인 정선희

정선희 작가님이 “큰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 공감했었다.

정유정 작가(이후 정 작가) 사실 작가들이 소설을 쓰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철학방식이 있을 수 있고, 상아탑이 될 수도 있고, 예술이 궁극적인 목표일 수 있는데, 나는 광장이 목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조그마한 땅이 있다면 거기에 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다. 그것을 독자들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굉장히 독재자적인 발상이라며 멋쩍어 하는 정 작가에게, 정선희 씨는 바로 그것이 매력이라 말하며 "앞으로 나가는데 주저없는 문장들을 볼 때면, 요새 유행하는 ’진격의, 단언컨대’와 같은 형용사가 정말 잘 어울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콘서트의 특별 게스트인 천명관 작가의 등장으로 공연장의 열기가 한층 고조되었다. 정유정 작가는 "천명관 선배가 문학동네 소설상에 당선되는 해에, 나는 예선에서 떨어졌다. 천 선배의 책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책을 사서 밤새도록 읽었는데, 새벽에 창가에 세워두고 ’내가 졌다’라고 생각했다. 문단에 나가면 내가 꼭 가서 얼굴을 보고 사인을 받겠다고 결심한 후,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 결국 사인을 받았다"라며 문학동네 소설상을 통해 천 작가를 알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천 작가는 "전혀 몰랐다"며 자신은 어느 기자가 정유정 작가의 책 읽어봤느냐고 물어봐서 완전 팬이라고 했더니 술자리를 마련해줘 친해졌다고 덧붙였다.

↑ 특별 게스트 천명관 작가와 정유정 작가

정선희 천명관 작가는 <28>과 <7년의 밤>을 모두 읽었는데, <28>쪽에 손을 더 들어주었다. 그 이유가 있다면?

천명관작가(이후 천 작가) <7년의 밤>을 읽고 “<7년의 밤>으로 인해서 한국은 크라임 스릴러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를 맞이했고, 내가 예언을 하자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장르의 책들이 서점가를 뒤덮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렇게 말했지만 ’이건 정유정 아니면 안되는 거 아닌가, 정유정 하나밖에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우려도 했다. 그렇게 서점가를 뒤덮으려면 그 장르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내공을 가진 사람은 정유정밖에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문학작품이든 영화든 기술을 되게 중시한다. 남에게 읽힐만한 글을 쓰는 것, 볼만한 영화를 만드는 것, 들을만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일정한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없다면 혼자 쓰고 만족해하는 일기장 같은 것에 불과하다. 문장을 쓰는 기술, 인물을 성격화 하는 기술, 플롯을 짜는 기술, 어떻게 긴장을 주고 풀어내고 어떻게 복선을 깔고. 순전히 기술적인 부분만 봐도 한국에서 정유정 작가가 뛰어난 작가라고 보는데, 소설 <28>이 그런 기술적인 면에서 좀더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정선희 캐릭터라이즈(어떤 대상에 특정한 성격을 부여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천명관 작가가 <28> 안에서 탐나는 캐릭터가 있다면?

천 작가 개 ’링고’가 매력적이다. 잭 런던의 <늑대개> 이야기가 떠올랐고, 의사 아들 ’동해’라는 인물을 보면서 정말 재밌었다. 정유정 작가가 다음에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했는데 인간의 어둡고 섬뜩한 이면을 그려내는 것이 너무 탁월해서 기대된다.

정유정 작가는 같은 질문에 "천명관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고래>인데,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고령화가족>의 ’오함마’이다"라고 말하며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고 가장 천명관다운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이에 정선희 씨는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토끼’를 보면서 철저하게 비극인 장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그 거리감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정선희 두 작가의 소설을 들여다보면, ’결국 궁극의 화두는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간을 들여다보고 인간의 심연을 끄집어내는 부분이 닮은 것 같다. 소설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데, 표현 방법이 있다면?

정 작가 천 선배를 봤을 때 경이롭다고 느끼는 것은 씨앗 하나를 던져놓으면 그 씨앗이 포자를 수도 없이 퍼뜨려서 순식간에 대지를 덮어버리는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저렇게 소설을 자연스럽고 파도가 쓸어버리듯 쓸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런 부분은 타고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소설은 기술적인 부분을 중요시해서 묘사라던가 전체 플롯을 만들 때 버리는 연습을 많이 한다. 내가 쓴 것이 이야기에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할 때가 있어 버리려고 노력한다.

천 작가 작년 가을쯤에 정 작가에게 지리산에서 <28> 초고를 끝내고 내려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저는 “축하한다, 다음달쯤에 책이 나오는거냐?”라고 물었더니 이제 시작이라고 해서 놀랐다. 그 완성된 원고를 버리고 깎고 해서 지금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초고를 이번 달에 끝낸다면 다음 달에 책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정유정 씨는 깎고 깎아서 쓰는 것 같고 저는 붙이고 붙여서 만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찌보면 정반대의 스타일인데 공감이 가고 부러운 면이기도 하다.

정선희 글이라는 것은 나를 표현하는 흔적인데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매력을 말한다면?

정 작가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렵다. 특히나 소설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알래스카 설원에 서서 ’내 여기에 꽃삽 하나로 도시를 건설하리라’라는 기분이다. 너무 막막하고 어떤 것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 사실 플롯을 짜고, 나사 하나 박을 곳까지 정해놓고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완전히 앞이 안보이는 사람이 앞을 더듬어서 길을 나아가듯이 더듬더듬 소설을 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을 고치고, 또 고치다보니 작품이 나오고, 글과인연을 맺게 된 것 같다.

천 작가 오랫동안 영화를 했기 때문에 내 얘기를 안 썼다. 영화라는 것은 남들에게 객관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단편을 쓰면서 내 얘기를 쓰기도 했다. 내 인생을 어느 정도 정리하는 측면도 있다. 남들에게 꺼내지 못한 말,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을 글을 통해서 하니까 어느 정도 치유 효과도 있고 새로운 면을 봤다.

정선희 씨는 “결국 쓴다는 행위 자체가 가장 깊숙이 있는 나를 꺼내 올리는 행위인 것 같다. 이러한 작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전하며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이어나갔다.

정선희 천명관 작가가 봤을 때 정유정 작가의 작품 중 어떤 작품이 영화화되면 가장 재미있을 것 같은지?

천 작가 일단 <28>은 도시 하나를 폐쇄해야 하니까 돈이 많이 들 것 같다(웃음). 역시 <7년의 밤>이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 제작이 확정돼 시나리오를 수도 없이 고치는 중인데, 무엇보다도 저수지가 있는 음습한 기운과 무대가 되게 마음에 든다. 문장을 영화로 옮기는 게 사실 너무나 어려운 작업이긴 한데, 조만간 멋진 영화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독자들의 질문도 많았는데, 그중 작가를 꿈꾼다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용기있는 질문에 공연장에 웃음꽃이 피었다. 소설 <28>을 통해 작가님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작가로서의 사명감과 독자들이 느꼈으면 하는 부분에 대한 질문에 독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정 작가 나의 어릴 때를 보는 것 같다(웃음). 작가는 사회적 발언, 정치적 발언 등을 해야 한다는 임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로서 해야 하는 것은 딱 한가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난이 두려워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작가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소설을 쓸때 사람들의 비난이 두렵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진실을 쓰려고 노력한다.

독자들에게 원하는 시각의 차이라는 것은 결국 세계의 차이인데,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보다는 ’내 삶 밖으로 확장을 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읽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두 가지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데, 소설로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세계를 살아볼 수 있고 다른 인생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즐기는 차원에서 읽으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정선희 씨는 “이렇게 동시에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기 힘든데, 오늘 모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북콘서트에 찾아 준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 인터파크 독자들에게 보내는 정유정 작가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