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참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단어이고, 사춘기 아이들의 전유물처럼도 느껴진다.

그러나 정말 힘들 때 혹은 충동적으로 한 번쯤 '가출'을 꿈꾼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었다.(150-151쪽)

오늘날 가정의 경제적 만족도를 책임지기 위해 뛰고 뛰는 아버지 역시 그러할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곁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어머니의 애틋한 감정도 없었고, 강인하다고 해서 아플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하는 존재가 가정 안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있다. 어떤 초등학생은 시에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희생은 많이 회자되지만, 아버지의 희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좀 촌티가 나는 걸로 여기는 사람도 많잖아. 알코올중독 아버지, 폭력주의 아버지, 권력 지향 부정부패 아버지. 아버지 이미지는 이런 식이야. 아버지들이 만든 안락에 기대 살면서도 그래. 우리 아버지는 생전에 술만 먹으면 치사해, 치사해,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그땐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요즘은 알아. 그 양반이 당신의 꿈을 버리고 치사해져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배우고 굶지 않았다는 거.(207쪽)

아버지의 희생과 그 가치를 너무 무관심하게 지나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 물론 가정적이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를 두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인물들 누구에게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닮은 나는 아버지를 들여다보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강압적 굴레 속에서 살아온 '선명우'는 우연치 않게 가출 아닌 가출이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찾는다. 사랑하는 여자를 가슴에 품고 책임감과 죄책감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아내와 세 딸의 소비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하면서 살던 전반부와 자연인으로서 방랑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생산성보다는 건강성에 중점을 두는 인물로 변한다. 췌장암에 대한 고뇌에서조차도 자유로워진 그의 모습은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은 모습이고, 잃어버렸던 건강한 자아를 회복한 모습이다.

그의 아버지는 '염부'였는데, 염부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생계 유지를 위해 선택했던 일이었다. 오로지 선명우만을 뒷바라지한 아버지, 작은형은 폐결핵으로 일찍 죽고, 큰형과 두 누이동생은 염전에서 일했다. 대학 졸업식을 가고 싶어했던 아버지를 막고 싶지만, 막지 못한다.

몰강스러운 햇빛을 견디면서 소금을 모으고 있는 늙은 남자는 어김없이 그의 아버지였고, 그곳은 들끓고 있는 자신의 조국 어느 변방의 작은 염전이었다. 그런저런 세계사의 변방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인식 못한 채, 늙어가는 그 남자에게 오직 '빨대'를 꽂고 생명을 유지해온 것이 바로 그와 그 자신의 형제들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빨대, 빨대였다. 그걸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그는 그래서 깨달았다. 자신의 졸업식에 오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다는 걸. 누구에게는 단지 하나의 의식일지 모르지만 아버지에게 그의 졸업식은 모든 인내의 끝이며 모근 희망의 집결체라는 걸.(315쪽)

그의 아버지는 염부였지만 그의 졸업식날 몸에 염분이 부족해서 사망한다. 그의 졸업식에 가기 위해 새벽부터 한낮에도 끊임없이 일했지만 원을 풀지 못했다. 비록 한동안 잊고 살았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차린 살림집에 큰형이 찾아오면서 그 역시 형제들에게 빨대로 빨리는 삶을 산다.

누군가 당신을 빨대로 꽂아 빨겠다면 어떻겠는가. 빨대로 빨리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함께 해서 행복한 일을 하고 싶지, 평등관계가 아닌 착취관계를, 더군다나 피착취자의 입장에 누가 가고 싶을까. 아버지가 아버지라서 힘들 때는 가족이 힘이 되지 못하고 착취하는 입장에 설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힘들었던 옛날, 희망이 될 만한 아이만 키워서 그 아이가 집안을 끌어가길 원하는 것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숨막히는 책임감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금'에 대한 지식도 넓어지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올 초에 저자강연회에서 '박범신 작가의 <소금> 출간 기념회'를 다녀왔는데, 그때 보았던 연극적 연출이나 저자의 이야기가 서로 퍼즐 맞추듯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엄마를 부탁해>처럼 모성을 울리는 작품이 있는 것처럼, <소금>처럼 부성도 눈여겨 보아 달라는 작품도 있는 것 같다. 부성을 되새기면서 <소금>을 녹여 본다.

소금, 염부, 아버지, 빨대,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