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소통의 부재'로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하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내게 고민만 안겨준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순서로 읽어야할까 고민했다. 물론 차례대로 읽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작가도 분명 무언가를 의도하고 차례를 정했을테니. 하지만 차례대로 읽고 싶지 않았다. 표제작부터 읽어줘야 할 것 같았고, 유난히 마음을 끄는 제목의 단편들이 몇 편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까 고민이다. 그의 작품을 몇 권 밖에 읽지 못했고, 아직 그의 대표작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잘 안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내가 읽어낸 것이 과연 맞는지도 모르겠고, 잘 알지도 못하는 그에 대해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또 재밌게 읽은 책들이 오히려 리뷰를 쓰기가 더 어렵다. 책 속에서 느꼈던 그 재미를 부족한 내 글로 온전히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온전히 풀어낼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서 간직하는게 나을지도. 오늘도 난 부족한 내 글을 탓하며 리뷰를 쓰기 시작한다.

   "당신은 나의 통역으로 고용됐는데도 내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내가 왜 '시체의 수영'이라고 말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어. 당신은 내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몰라." (p19,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김연수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통해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마음 하나 제대로 전하지 못한 시인(「세계의 끝 여자친구」), 자신의 죄책감을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전하지 못한 전직 형사와 직장 동료와 오해의 벽만 쌓아가는 강(「내겐 휴가가 필요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통역에도 어려움을 겪는 해피와 나(「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어야 하는 딸(「달로 간 코미디언」), 아내의 외국인 친구를 통해 비로소 아내를 이해하게 된 남편(「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 그들은 하나같이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군가와 소통하려면 그를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우리는 얼마만큼 그들을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p316, 「작가의 말」)

   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힘들다. 그를 위로하려면 그의 마음을 안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해줘야 한다. 그런데 감히 우리 중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렴풋이 아는 것만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오만이 아닐까. 차라리 위로의 말 하나 건네지 않는 매정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런 식의 위로는 하고 싶지 않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김연수를 만나 반가웠다. 그는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하면서도 한번도 '소통했노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소설가에게 고통이란 자기가 쓴 소설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책이 안 팔리는 일이지요." (p232, 「달로 간 코미디언」)

   사실 김연수는 어떤 이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몇 편 읽어봤지만, 공통된 생각은 '이해하기 어렵다'였다. 한번도 쉽게 읽힌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외면한 적도 많았다. 아마도 그는 나같은 독자가 있다는 걸 알았나보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내가 만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읽히는 책이고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보인다. 그는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소통하지 못했던 독자와의 소통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재밌고 좋은 소설이라도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동안 나와 같은 이유로 그를 외면해왔던 독자라면 이번 기회에 그를 꼭 만나보길 바란다.

 09-123. 『세계의 끝 여자친구』 2009/09/27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