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도, 사랑도, 하물며 죽음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 다섯 젊은이들의 흐느낌!
   사람 심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김형경 작가의 심리여행에세이인 『사람풍경』을 읽고나서 다시는 읽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것도 잠시뿐. 그래도 소설가인데 에세이만 읽고 그녀의 글쓰기를 평가하는 건 반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신작소설인 『꽃피는 고래』를 읽었고, 역시 소설가는 소설을 써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형경 작가의 작품을 더 읽고 싶어서 찾던 중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알게 됐다. 이 작품은 "제1회 국민일보 문학상" 수상작으로, 최초로 1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거머쥔 작품이라고도 한다. 요즘 상금값 못하는 작품들이 꽤 많은데, 더러는 상금값 못하는 작품을 선정하느니 차라리 수상작을 내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과연 이 작품은 1억짜리일까.
   김형경 작가의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 유독 이 작품이 눈에 띈 것은 1억짜리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보다는 제목 때문이었다. 로맹 가리의 소설집 제목을 연상시키는 제목이 마냥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부엉이는 부엉 부엉, 뻐꾸기는 뻐꾹 뻐꾹, 소쩍새는 소쩍 소쩍 울어서 제 이름들이 된 것일뿐인데, 어떻게 보면 새들의 이름은 참 단순하고 재밌는 것들인데 왜 그것으로부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걸까. 아마도 새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어서 각기 다른 소리로 울어대는 것이리라.

   구운형, 진은혜, 민형조, 김시현, 최민화. 그들은 대학에서 민주시화회를 통해 민중 미술 운동을 하던 친구들로, 졸업 후 7년동안 저마다의 삶을 살며 서른을 향해 가고 있다. 유일하게 줄곧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해왔던 민화의 자살 소식에 친구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야기는 자살한 민화를 제외한 나머지 네 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화자로 등장한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묘하게 얽혀있다. 한 친구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다음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고, 또 그 친구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그 다음 친구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그 궁금증에 서둘러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다.

   이 작품이 발표된 때는 1993년이다. 그즈음 우리 문학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운동권 이야기를 대놓고 하기에는 다소 식상했을 것이고, 그렇다고 안하자니 시대정신 운운하며 손가락질 받을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식상해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써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그런 식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힘을 잃어가고 있는 노동현장운동과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언급함과 동시에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젊은이들의 과도기적인 모습도 함께 그리고 있다. 그 시절 그들에게는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다. 운동도, 사랑도, 결혼도, 하물며 죽음까지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이는 그런 세상과 타협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포자기를, 그리고 어떤 이는 아예 등을 지기도 한다. 끊임없이 엇갈리는 그들의 사랑이 안타까웠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쉬운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슬펐다.

   그 안타까움과 슬픔은 김형경 작가의 문장을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시인으로 등단한 김형경 작가의 묘사는 섬세하면서도 풍부하다. 어떤 문장들을 보면 묘사는 있으나 실체가 없는 것들이 간혹 있다. 과연 그것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표현을 뭉그뜨려서 떠올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녀의 표현은 나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도 이내 그것을 그려볼 수 있을만큼 친철하다.

   대개 책을 소개하는 광고문구는 독자들을 낚는 경우가 많다. "90년대, 한 매혹적인 작가의 탄생을 알린 바로 그 소설!" 이번만큼은 이 광고문구를 믿어도 된다. 앞서 이 작품은 과연 1억짜리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충분하다고 대답하려다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임을 깨달았다. 그저 재밌게 읽고 즐거웠으면 그만이지 굳이 값을 따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왜 그 많은 소제목 가운데 하필이면 이것이 작품을 대표하는 제목이 됐을까? 책을 읽는내내 생각해봤지만 확실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 다른 독자들의 도움을 받아보려고도 했지만, 그들은 이미 해결했거나 궁금하지 않았나보다. 김형경 작가가 로맹 가리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나처럼 이 제목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다음에 김형경 작가를 만나게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09-145,146.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1,2』 2009/12/1 by 뒷북소녀.

   이렇게 서른을 맞을 줄은 몰랐다. 서른이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한눈에 조감되고 인생의 길목에도 가로등 같은 것이 켜져 있을 줄 알았다. 결국, 인생을 십진법 단위로 인식한 것부터 환상이었다. 열 살이 되어도 아홉 살과 다르지 않았고 스무 살이 되어도 열아홉 살과 다르지 않았는데, 어쩌자고 서른이라는 나이에 그토록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일까. (2권, p254)

   "새들이 울 때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운다는 거 알어? 딱따구리는 딱따구르르 하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하고 까마귀도 소쩍새도 다 그래.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울지. 그 생각을 하면,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우는 동물은 새인 것 같아." (1권,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