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던 박민규 작가 맞으세요? 정말 멋져서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지 벌써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난 고민만 하고 있다. 과연 지금의 내 감상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럴 땐 자신의 감상을 제대로 풀어쓰지 못하는 내 글이 한없이 안타깝다. 책 속에서 '나'는 '요한'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무 많은 말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단 한 줄도 쓰지 못하셨을 거예요."(p.149) 지금의 내가 그렇다. 정말 좋았기 때문에 그 어떤 말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상임을 감안해줬으면 한다.

   박민규는 재기발랄하다.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상 이 책이 나왔을 때는 그리 반갑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여름에 스무 살 남녀의 로맨틱한 이야기라니. 생각만해도 더웠다. 어쩌면 로맨티스트로 귀환한 그의 작품에서 더이상 재기발랄함을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갈대도 흔들리고, 사람의 마음도 흔들리는 계절이 왔다. 정말 심난해서 며칠동안 책 한장 넘기지 못했을 때, 이 책이 떠올랐다. 책 속 연인을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별하는 연인을 보며 나만 외로운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p.15)

   스무 살에 만난 그와 그녀, 그녀는 그에게 묻는다.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 이 물음 앞에 붙는 단서는 그녀가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보고 비웃는다. 그녀는 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두려웠고, 사람들 속에서 외로워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니, 아니에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녀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솔직한 대답일 수도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 자신도 외모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내 눈에 비친 작가 박민규의 첫인상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비호감형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의 글 또한 내 스타일이 아닐거라 단정하며 그의 작품들을 피해왔었다. 우연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게 된 이후 지인들에게 무조건 이 책을 추천한다. 책이 정말 재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외모를 보고 그의 글까지 단정지어버린 것이 못내 미안했던 탓도 있다. 어쩌면 작가 자신도 외모 때문에 그녀와 같은 경험을 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오히려 더 튀는 스타일을 추구했는지도.

   처음 몇 장을 읽고선 깜짝 놀랐다. 그가 너무나도 진지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저 유쾌하기만 했다면, 이번에는 유쾌함을 넘어서 깊은 고민과 아련함까지 전해져 온다.(아무리 고민해도 이 느낌을 표현할 수가 없다. 나를 좌절에서 구해줄 수 있을까?) 혹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이 될 정도로 진지해졌다. 그리고 책을 곱씹어 읽게 한다. 문장도 그러했고, 전개도 그러했다. 끝부분을 읽고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게 만든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아!'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무릎을 치게 만든다. 
   또 그의 독특한 문단 나누기를 엿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그 문단 나누기 때문에 문장이 더 극적으로 읽힌다. 문단 나누기조차 틀에 박히는 걸 싫어하는 그, "무규칙이종소설가"라는 별명이 딱이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반짝거림이 사그라드는 작가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성숙해지는 작가가 있다. 아직 많은 작품을 써내지 않았지만, 분명 박민규는 후자가 될 것이다. 누군가 내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앞으로는 무조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09-134.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09/10/22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