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없어' 좋은 작가 이기호의 작가적 고민을 엿보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연상시키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최순덕 성령충만기』의 작가 이기호가 2년만에 펴낸 두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은 작가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여러 문예지를 통해 발표한 8편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작가로서의 고민을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다.

   표제작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늘 친구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한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친구들에게 맞아 다쳐서, 혹은 정신적 상처 때문에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혼자 집에서 글을 썼다. 어른이 된 소년은 어렸을 때의 경험을 글로 옮기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늘 갈팡질팡 헤매기만한 그가 지금처럼 된 건 우연이라고 말한다.
   「원주통신」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어릴 적 박경리 선생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 그러나 한번도 선생을 직접 만나지도, 작품을 읽어본 적도 없다. 그저 여느 집처럼 선생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갈 뿐이다. 어른이 된 주인공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은 '한라산을 서울로 옮기는 방법'을 질문했고,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대답한 그는 당연히 떨어졌다. 훗날 우연히 박경리 선생을 만난 주인공은 선생에게 '한라산을 서울로 옮기는 방법'을 물어본다. 선생의 답을 들은 주인공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울먹인다.
   「수인(囚人)」은 소설만 쓰다가 나라가 망한 줄도 모르는 한 소설가가 등장한다. 뒤늦게 다른 사람처럼 이민을 원했지만, 자격증도 없고 직업이 소설가인 그가 갈 수 있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심판관은 교보문고 책장에 꽂혀 있는 그의 소설책을 가져오면 이민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이미 콘크리트로 폐쇄된 서점을 그는 곡괭이 하나를 들고 파기 시작한다. 며칠동안 노동의 대가로 소설책을 찾은 그에게 심판관의 한마디가 비수를 꽂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소설이 아니라 그도 노동을 할 수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와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대해 쓰고 있다.
   「당신이 잠든 밤에」와 「국기게양대 로망스─당신이 잠든 밤에2」에서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에 국기게양대에서 국기를 훔쳐 팕도 한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어릴적 한 사건을 계기로 흙을 먹기 시작한 주인공이 앞이 보이지 않는 가난한 소녀에게 흙을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널린게 흙이므로, 흙을 먹을 수 있게 되면 하루 세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기호를 '개념 없는' 작가라고 한다. 소설가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설(가)'에 대한 개념, '인물'에 대한 개념, '역사'에 대한 개념이 그에게는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는 성석제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박민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개념 없음'은 단순한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개념'을 성찰하고 있기 때문에 좋다고 한다. 그 '다른 개념'의 매력에 한번 빠져보라!

09-14.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2009/02/15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