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없다고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지 말자!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 또한 사람의 일이다!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 한번 내밀어 본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 남을 돕는 사람들의 진심마저 의심하곤 했다. 아마도 사람들의 진심을 홍보에 이용하는 미디어의 탓이 크리라. 덕분에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는 미담은 일단 의심부터하게 된다.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50년 동안 입양아들을 진료하며 ‘고아들의 대모’ 혹은 ‘입양아들의 어머니’로 불렸던 조병국 의원장의 에세이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를 읽으면서 나는 한없이 작고 부끄러운 존재가 됐다. 왜 나란 인간은 사람들의 진심도 모른채 늘 냉소만 보냈던 것일까? 책을 덮은 후 한참동안 먹먹한 가슴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 봤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58년, 당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의 레지던트였던 그는 홀트아동복지회로 파견근무를 하러 오게 되면서 기적 같은 인연을 맺게 된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이어야 하는 의사들, 그들은 의사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기적을 믿는다고 한다. 박봉에다가 몸까지 고된 그 일을 그가 50년 동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바로 ‘기적’이 있기 때문이다.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병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었는데 곶감 달인 물을 마시고 기적처럼 되살아난 영희, 뇌성마비에다가 부모님에게 버림 받고 해외로 입양된 후 어엿한 의사가 돼 돌아온 영수, 친엄마가 안고 기차로 뛰어드는 바람에 양쪽 다리를 잃어버린채 입양됐지만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 장애가 있어서 친부모에게 버림 당한 아이를 더 큰 사랑으로 키우는 양부모, 친부모에게 버림 받았지만 자신을 입양해 잘 길러준 양부모에게 감사하기 위해 역시 아이를 입양해 기르는 부부... ‘기적’이 아니고서야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또한 사람의 힘이다.
   세상에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거나 감당할 수 없는 폭행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50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간 아이들만 5만 명이 넘는다. 또한 그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품어 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이 다른 이들보다 경제적 혹은 시간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이 아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다. 혹자는 그들이 입양수수료를 받고 ‘고아를 수출한다’고 생각한단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진심마저 의심하지 말자. 나는 지금 한낱 어리석음으로 그들의 진심을 곡해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그저 잠시 도움을 줬던 경험으로 쓰여진 책이 아닌 평생 그들과 함께 했던 할머니 의사의 이야기라서 더욱 아프고 따스하게 스며든다. 이 책은 이미 부모가 된 어른들이 아닌 나처럼 앞으로 부모가 될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럼, 청진기를 내려 놓은 할머니 의사의 마음이 좀 더 편해질 수 있으리라.

09-137.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2009/10/29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