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이런 꿈을 꿉니다. 전쟁이 나서 사람들은 부리나케 피난 갈 준비를 하는데 전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이유는 바로 책. 책장 가득 채우고도 넘쳐나는 저 책들 중에서 도대체 무얼 고른단 말인가. 재밌는 책? 아님 오래도록 읽을 수 있는 책? 피난보따리의 한정된 공간에 넣을 안성맞춤인 책을 고르지 못해 안절부절 하는 거지요. 그러다 잠에서 깨어나면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읽고 소장하고 싶은 저만의 책 목록, 리스트를 뽑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인데요. 언젠가 지인에게 이런 얘길 했다가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제겐 정말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인데...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데 저와 비슷한, 정말이지 너무나 흡사한 고민과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의 저자 권오섭씨인데요. 그와 저의 다른 점이 있다면 제가 전쟁이 났을 때의 필수아이템 ‘책’이 고민이었지만 저자는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들어야하는 음악, 음반이 문제였습니다. 어떤 책을 골라야할지 망설이다 시간만 보내고 말았던 전력(?)이 있는 저인지라 그의 고민이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의 뇌리에 불현듯 스치고 지나간 음악이 무엇인지, 그 중에 내가 알고 있는, 좋아하는 음악도 있을까 궁금하더군요.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저자가 추천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면 안 될 음악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요. ‘가족이 그리울 때’ ‘친구가 생각날 때’ ‘연인의 손을 잡고 싶을 때’ ‘고독을 즐기고 싶을 때’라는 주제를 두고 그와 어울리는 음반을 각각 열 개씩 소개되어 있습니다. 명절이면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흘러나온 노래들을 시작으로 R&B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됐던 스티비 원더, 캐롤 킹, 제 블로그 배경음악인 'Mandy'의 배리 매닐로우, 사망기사로 전 세계의 팬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트럼펫이 다른 어떤 악기보다 아름답고 감미로우며 섹시하다는 걸 알려준 쳇 베이커, 뮤지션의 이름이 곧 음악이자 세대를 이끌어간 아이콘이었던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퀸, 비틀즈...여기에 이문세와 들국화, 김현식까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하고 무릎을 칠만한 음악들이 가득한데요.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책에 소개되어 있는 음반들이 평론가나 음악 전문가들이 말하는 ‘명반’, ‘희귀음반’이 아니라는 겁니다. 각각의 뮤지션마다 그들의 음악,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을 선별해 놓았습니다. 한마디로 대중적이면서도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란 건데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캐롤 킹의 ‘Will You Love Me Tomorrow’, 퀸의 ‘Bohemian Rhapsody’처럼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과 저자의 별표가 일치하는 음악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저자가 꼽은 40장의 음반과 그 이야기를 읽는 내내 학창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서둘러 녹음버튼을 누르던, 그렇게 하나의 카세트테이프가 완성되면 그것이 늘어날 때까지 듣고 또 듣고 했습니다. 그러다 CD가 등장했을 때, 정말 획기적이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만난 음악은 왠지 어색했어요. 턴테이블 위에서 지지직거리며 미세한 떨림마저 느껴지던 음악에 비해 더없이 매끈하고 선명했지만 싱거웠습니다. 음악은 역시 음악 그 이전에 이야기고 추억이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한 포털 사이트에 블로그를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단장하는 재주가 없는지라 블로그 역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지 못합니다. 하지만 단 하나, 음악은 나름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쏟아내듯 빠른 가사와 박자를 쫓아갈 수도 없는 리듬의 음악이 가득한 요즘, 저의 귀와 마음을 달래줄 음악을 찾아 블로그의 배경음악으로 해놓곤 하는데요. 이따금 이웃 블로거와 지인들에게서 제 블로그의 음악이 좋더라는 얘길 들으면 뛸 듯이 기뻤습니다. 저와 공감을 해 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