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구치 지로를 처음 만난 것은 <열네 살>을 통해서였습니다. 워낙 만화를 좋아해서 십대취향의 순정물, 스포츠만화를 비롯해서 코믹만화까지 두루 섭렵하는 편이지만 성인대상의 만화는 제외였습니다. 그러다 당시 제가 참가하고 있는 모임의 추천도서목록에 바로 <열네 살>이 있었는데요. 우선 그림체가 기존의 만화와 확연히 다르더군요. 사실화된 등장인물과 사물, 섬세한 배경묘사,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이야기들. 이렇게 평범한 것을 왜 만화로 그렸을까...처음엔 의문을 품었는데요.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다가오는 따스하고 포근하고 아련한 느낌은 그동안 잊고 지내온 뭔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다니구치 지로가 제 완소작가가 되는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몇 년 전 <고독한 미식가> 이후로 그의 작품이 출간되지 않아서 궁금하던 차에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 바로 이 <창공>이었습니다.

자정을 넘긴 깊은 밤, 인적이 뜸한 도로에서 오토바이와 승합차가 정면충돌하는 사고로 <창공>은 시작됩니다. 사고자가 의식불명이 될 만큼 큰 사고였지만 천만다행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면서 사고발생 22일 만에 기적적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간신히 눈을 뜬 이에게 사람들은 “타쿠야!”라고 부르지만 그는 모든 게 낯설 뿐이었습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회사업무가 밀려 자신은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는 것, 과로로 인해 쓰러지기 직전이었으며 사고 당일에도 납품하러 가다가 도로 맞은편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충돌했다는 거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타쿠야’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쿠보타입니다. 쿠보타 카즈히로.” 하지만 그는 이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 ‘내가 아니’라는 것.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당황하던 그에게 쿠보타가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듭니다. 자신은 멀쩡히 살아있는데 왜 죽었다고 하는가! 그는 혼란에 빠져듭니다.

사건은 이렇게 된 거였습니다. 문제의 충돌사고로 인해 사십대의 가장이었던 쿠보타의 영혼이 열일곱 살인 타쿠야의 몸에 깃들게 된 건데요. 의식을 회복한 쿠보타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아내와 아이에게 알리기 위해 집을 찾아가지만 타쿠야의 모습에 깃든 남편의 영혼을 알 리 없는 아내는 타쿠야를 외면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타쿠야의 영혼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타쿠야의 몸에 타우야의 영혼과 쿠보타의 영혼이 공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요. 자신이 곧 사라지게 될 거란 걸 깨달은 쿠보타는 가족을 만나 삶의 마지막 순간 미처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두 사람의 영혼이 서로 바뀌는 이야기는 몇 몇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었지만 이렇게 한 사람의 몸에 낯선 두 사람의 영혼이 깃들게 되는 건 처음 만나는데요. 저자가 주인공들을 이렇게 생소하고 낯선 상황으로 몰아넣은 이유는 뭘까요? 그건 아마도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확실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니구치 지로가 그의 많은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전하고 있는 이야기, ‘가족의 소중함’. 이걸 잊지 말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바로 또 하나의 타쿠야가 아니었을까요?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