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세요? 북한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 바로 우리나라 중2가 무서워서래요. 얼마전 지인에게서 이 얘길 듣고 정말 기가 막히다며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춘기로 가장 심하게 몸살을 앓는 때, 명랑함과 우울함 사이를 하루에도 수시로 오고가는 심리 상태에, 혈기왕성하다 못해 다소 폭력적인 성향까지 나타나는 시기가 바로 중2때여서 ‘중2병’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인데요. 그것을 어쩜 그리도 콕 집어냈는지... 우스갯소리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방황과 아픔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소설 <방관자>에서도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바로 집단 따돌림. 왕따인데요.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소설의 배경이나 등장인물의 이름만 낯선 이국의 것일 뿐,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책의 주인공은 에릭 헤이스. 그는 아빠와 헤어진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롱 아일랜드로 이사를 옵니다. 평범하지 않은 아빠에게서 벗어나 새 출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라고 엄마는 말하지만 에릭에겐 그렇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도 아닌 2학년에 새로운 학교로 전학한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습니다. 일 년간 지내면서 친숙해진 기존 아이들의 무리에 자신이 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요. 그래도 에릭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 아니었어요. 새 학교에 전학하기 전 에릭은 우연히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목격하는데 바로 그 아이를 교실에서 만난 겁니다. 주근깨가 있는 창백한 얼굴, 겁먹은 표정의 아이, ‘케첩 보이’ 할렌백을. 잠깐이지만 에릭은 이내 알아차립니다. 할렌백이 왕따라는 것을. 그때 한 아이가 에릭에게 주의를 줍니다. 저 애와 말을 하지 말라고. 상대 안하는 게 좋다고. 한 번이라도 잘해주면 달라붙게 될 거라고. 또 한 아이가 다가옵니다. 그의 이름은 그리핀. 눈에 띄는 외모에 활달한 성격으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을뿐더러 처음 만난 에릭의 엄마도 인정할 정도였지요. 에릭도 그런 그리핀을 ‘내 친구’라며 특별하게 여기고 자신의 속마음도 털어놓게 되는데요. 그러다 어느날 에릭은 그리핀에게서 낯설고 오싹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낯선 학교, 낯선 아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다가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에릭. 어느 누구도 섣불리 도와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용기를 내고 해결책을 찾아가는데요. 자신이 ‘피해자’가 되기 싫어서 부당한 장면을 보고도 묵인하는 ‘방관자’가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것 같진 않아. 현실을 정확히 보자구. 할렌백 같은 애들은 항상 당하게 돼 있어. 그게 정글의 법칙이야. 강자만이 살아남지. -109쪽.

많은 이는 말합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한테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보내고 우리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집단따돌림, 왕따 당하는 아이를 곁에서 도와주고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상황, 용기 없음을 그렇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로 자기 합리화하는 거라고. 결코 ‘가해자’는 아니라며 변명하는 거라고. 또 언제 자기도 왕따를 당할지 몰라 두려워하고 가슴 졸이고 있지는 않을까요.

‘방관자인가? 다음 희생양인가?’ 이 짤막한 부제에 책이 전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2009년 출간된 <방관자>는 현재 미국의 중학교에서 토론의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심각한 지경에 이른 우리의 학교 폭력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학부모와 교사,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반드시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