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꼭 보려고 했던 영화가 몇 편 있었는데요. 일상에 쫓겨 하루하루 미루다가 결국 놓치고 말았습니다. 문제의 영화는 바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부러진 화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니만큼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려고 하다가 상영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려서 얼마나 안타깝던지...

평소에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이슈가 되는 기사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석궁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당시 둘째를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사건보도에 둔감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때문에 <부러진 화살>은 저의 관심사,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영화에 주목하게 된 것은 국민배우로 통하는 안성기가 출연한다는 것과 실제로 벌어진 법정공방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장 공정한 인물,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서 오로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만 주력하리라고 여겼던 판사와 법조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예상과 다르다는 느낌. 위험한 의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궁금하더군요.

김명호 교수는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를 역임했는데 평소 부정부당한 걸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동료교수들도 그를 불편했다고 합니다. 문제의 발단은 그가 1995년 대학별 입학 고사에 수학문제 채점 위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였어요. 출제된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걸 발견한 그는 동료 교수에게 털어놓습니다. 자그마치 15점짜리 문제인데, 이것 때문에 합격자의 당락이 바뀌게 된다고. 미처 알지 못했던 일에 당황한 교수들은 동료의 실수를 파헤칠 게 아니라 조용히 덮고 넘어가자며 그를 채점위원에서 빼 버립니다. 이에 김명호 교수는 총장에게 항의하고 결국 그는 수학과 조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수학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보복 당했다고 여긴 김 교수는 부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내지만 그것이 기각되고 말자 해외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조차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거듭 부당한 일을 당하자 그는 앞으로를 위해 예전의 일을 바로 잡아야겠다며 2005년 귀국합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로 봤을 때 김 교수는 자신이 분명 승소할 것이라 여겼지만 재판부는 증거불충분으로 패소판결을 내려지고 그는 곧바로 항소를 합니다. 그러나 이후 모든 일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자 김 교수는 담당 판사의 집을 찾아가 법전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패소했다며 거세게 항의를 하는데요. 바로 그때 김 교수가 갖고 있던 석궁이 문제였어요. 김 교수는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우발적으로 발사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담당 판사는 조준 발사였다고 반박하면서 결국 구속되고 맙니다.

김 교수와 석궁사건을 어떤 예비지식도 없이 저자의 서술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저자가 김 교수의 재판을 ‘이상한 재판’이라고 했던 것처럼 저 역시 책 읽는 내내 ‘참으로 이상하네...’를 연발했습니다. 이게 정말 우리나라 법조계의 현실인가 싶어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김 교수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법을 고의로 무시하는 판사들처럼 무서운 범죄자는 없’다는 그의 말에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밝힌 저자는 우연히 알게 된 ‘석궁 사건’에 2년 동안 관련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조사한 끝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글은 김 교수의 의도나 생각과는 달랐다고 서두에 밝히고 있는데요. 우연일까요? 최근에 ‘석궁 사건’을 다룬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판사, 니들이 뭔데?>. 저자 김명호. 석궁김명호출판사. ‘석궁 사건’을 이 책은 또 어떻게 다루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