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였다. 남동생과 함께 결혼한 언니집에 놀러갔는데 그날따라 언니의 퇴근이 늦었다. 끼니때는 지났는데 언니가 돌아오지 않자 난 모험을 시도했다. 엄마나 언니들이 전기밥솥으로 밥하는 걸 많이 봤으니까 틀림없이 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쌀을 씻고 밥솥에 안쳤다.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밥이 안되는 게 아닌가. 전기코드를 안 꽂았나 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상태였다. 동생은 그것도 제대로 못 하냐며 면박을 주고 짜증을 부렸고 그러는 사이 언니가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언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밥솥을 살펴보고 뚜껑을 열어본 언니는 어이가 없다는표정으로 말했다. "야, 취사버튼을 눌러야지. 코드만 꽂으면 끝나는줄 아냐?" 여고생이 밥도 제대로 못하다니. 순간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결혼12년차를 맞은 지금도 나의 살림솜씨는 그때와 별차이가 없다. 도서관 봉사때마다 작은 아이를 봐주러 오시는 친정엄마는 매번 한숨을 쉬신다. 살림솜씨가 이러니 사위보기가 미안하다고. 음식도 잘하고 깔끔하신 엄마에게서 어떻게 나 같은 딸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다.

 

최근 출간된 <생활도감>을 택한 건 아이를 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껴서였다. '음식. 옷. 집의 모든 것'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그야말로 의.식.주에 관한 모든 것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음식' '옷' '집' 세 부분으로 나눈 다음 각 항목에 따라 여러 가지 사항들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예전에 내가 실패했던 전기밥솥으로 어떻게 밥을 짓는지부터 요리도구엔 뭐가 있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스렌지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 전자렌지나 오븐을 이용해 간편하게 요리하는 방법 등을 설명한다음 보다 구체적으로 각 재료에 대한 설명과 요리하는 방법, 식사예절에 대해 설명해준다. '옷'에서는 세탁하기부터 시작하는데 집에 어린 아이가 있어서 옷의 얼룩을 빼는 게 문제였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짚어볼 수 있었고 옷이나 이불의 손질하는 방법도 일러준다. 

 

책에서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바로 '집'에서 청소와 정리정돈에 관한 부분이었다. '집'이 어떤 곳인지, 왜 매일 수시로 청소를 하고 정리정돈을 해야 하는지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빠른 시간에 깨끗히 제대로 청소하는 방법과 요령, 진드기나 곰팡이 같은 것들을 없애는 방법도 꼼꼼하게 짚어준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비결, 특히 아이들방을 어떻게 정돈하는지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딸이지만 언니가 많다는 이유로 음식이나 청소 같은 살림을 해본 경험이 없어설까. 난 지금도 살림에 서툴다. 때문에 난 아들도 가사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살펴보고 고장난 부분은 수리해가면서 자신이 머문 공간, 집과 가족에 대한 애정도 쌓이는 게 아닐까. 아이에게도 좋지만 나처럼 살림에 서툰 어른에게도 정말 유익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