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ED

가네시로 가즈키
양억관 옮김
북폴리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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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로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좋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더좀비스 시리즈 <SPEED>.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작가와 같은 작가이다. 더좀비스 4명의 남자아이들이 조력자로 일종의 도전과 모험을 그리는 이야기를 시리즈로 그려내고 있는 가즈키. 내가 알기론 이런 좀비스 시리즈가 총 4권으로 알고 있는데 후에 더 나왔는지 모르겠다. 기다리면서 와아, 하고 볼 정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뭐 반감없이 읽을만은 하다.

<SPEED>는 명문고를 다니던 평범한 모범생 여학생이, 자신의 가정교사이자 언니같은 존재가 자살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면서 언니를 자살까지 몰아간 사람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내용이 담겨져있다. 통쾌한 복수극의 조력자로 나오는 인물들은 당연히 더좀비스. 더좀비스를 통해 여자 주인공은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되고, 거기서 오는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가즈키 소설 중에 가장 약한 소설이 <SPEED>라고 생각을 한다. 반복적 설정에서 오는 지리함이랄까, 다시 읽어보니 느껴지는 지루함이랄까. 더불어 내가 가즈키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딱히 <SPEED>만이 문제가 아니라, 가즈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책 속 대사들은 약간 비현실적이다. 그러니까 요즘 표현으로 손발이 오글거림이라고 해야할까. 소설 속에 그려지고 있는 더좀비스의 모습이 영웅의 모습으로, 일탈을 권하고 결국 마침내는 승리한다는 그 공식 속에서, 그들이 내뱉어내는 말들이 현실감과는 조금 많이 동 떨어져있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가즈키 소설 자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가즈키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 그것은 가네시로 가즈키가 재일교포 3세 출신이라는 점에 있다. 가즈키 소설에 더좀비스의 리더격으로 나오는 박순신이라는 인물에게 애착이 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순신 이라니, 이름부터 확실히 재일교포 느낌이 오지 않는가. 말없이 눈썹을 긁적이는 모습이랄까. 늘 멋지고 쿨하게 그려지는 박순신, 듣자하니 여중고생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SPEED>에서도 역시나 꽤나 멋진 역할로 나온다. 여자 주인공에게 복싱의 원투 잽을 알려주고 보디가드 역할을 하니, 이런 역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말 안해도 잘 알게다.

재일교포 출신의 소설가 중에 가즈키말고 '현월'이라는 작가도 있다. 가즈키 소설과는 판이하게 분위기가 다르다. 가즈키의 소설들이 재일교포라는 어두운 점은 잘 그려내지 않는 대신 밝고 통쾌한 극적 결말로 흥분을 준다면, 현월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습습하고 어둡다. 몸을 파는 여고생이라든지, 가난에 찌들어사는 삶들을 보여줘 읽으면서 꿉꿉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읽다면 이런 생각이 든다. 같은 상황, 같은 처지에 세상을 보는 눈이, 풀어가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라고. 가즈키의 밝음도 좋고, 현월의 습습함도 좋다. 그들 바탕에는 재일교포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재일교포 작가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오전 과외를 취소하고 늦잠을 자다 읽어나서,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내린 커피에 얼음 동동 띄워 마시며 읽었더니 오후 내내 신선놀음한 기분이다. 이런 신선놀음에 시의적절한, 나쁘지 않은 책 선정이었던 것 같다. 가즈키의 소설은 짜릿하고 유쾌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