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문이당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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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와 두 남자의 공존.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미치게 좋아하는 영화 <글루미선데이>를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도 <글루미선데이>가 나온다. 그녀를 온전히 갖지 못한다면 반쪽이라도 갖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하는 자보의 대사가 소설 속 남자 주인공 덕훈의 대사가 되는 것이다.

이미 익히 들어온 <아내가 결혼했다>를 뒤늦게 접하면서 납득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소설에 등장하는 폴리아모리스트의 의견을 세상엔 이런 사람들도 있고, 이런 사랑법도 존재한다로 놓았다. 나와는 다르지는 그런 사람도 있다고 그냥 이해해버리고 나니, 이 소설이 불쾌하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폴리아모리스트의 추종자 주인공 인아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당한 것도 사실이다.

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만족한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좋아졌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그 남자와도 부부가 되고 싶다. 어느 한쪽이 싫어진 것이 아니고, 둘다 좋고, 결혼이 꽤 괜찮아서 두 사람 모두의 아내가 되고 싶다. 
여자 주인공 그러니까 아내는 이렇게 조른다. 먼저 결혼한 덕훈은 미쳤냐면서 펄쩍 뛰지만, 만약 이 조건을 수용하지 않는 다른 방도란 이혼임을 알기에, 그러기엔 자신의 아내가 너무 좋아해서 결국 백기를 든다. 이런 계산도 깔려있다. 남 좋으라고 이혼을 하느냐, 저들은 언젠가는 깨질 것이다. 현 상태에서 두명의 남편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법적 남편은 나 하나뿐이다. 결국 남은 남편도 내가 될 것이다.
그렇게 아내는 결혼을 했다. 새로운 남자와 새로운 결혼 생활을 시작하여 두집 살림이 시작된다. 아기를 낳는다. 나와 당신과 또 다른 남편 모두의 아이라고 명해진 딸을 낳는다. 감쪽같이 결혼 생활을 한다. 시부모에게 잘하고 남편에게 잘한다. 아이가 이런 가족관계를 받아들일 것 같냐는 말에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이해하지 않을까 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두 집 살림이라니, 아빠가 둘이라니, 아무래도 아직까진 편견이 남아있다. 아내가 찾아낸 방법은 다른 나라로의 이민, 뉴질랜드로 떠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유명세를 탔던 까닭은 첫번째가 파격적인 소재와 축구와의 결합, 두번째가 세계문학상 수상, 세번째가 김주혁 손예진 주연의 영화화 이다.

첫번째 이유는 줄거리를 대충 훑어봤으니 파격적인 소재부분은 이해가 될테고, 사실 놀라운 점은 축구와의 결합이다. 작가가 축구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애정을 자랑하지 않고서야 이런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모든 이야기의 축구의 역사와 일화와 철학과 축구선수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줄거리와 축구 이야기의 교묘한 교집합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이끌어 내다니, 동생이 이 책을 좋아했던 이유를 알겠다. (동생은 축구광이다. 한때 진지하게 축구선수하고 싶어서 엄청나게 집안식구들에게 졸라댔으나 신체조건 및 여러가지 이유로 포기했었다. 동생의 우상이었던 루이스 피구. 루이스 피구에게 팬레터를 보내기 위해 중딩 때 열심히 포르투갈어를 공부하던 동생. 물론 팬레터는 포기. 포르투갈어가 상상초월로 어렵다는 것. 에스빠뇰은 14살 소년에겐 무리가 있었다.) 소설과 무관하게 토막으로 실린 축구 이야기가 꽤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고, 책 읽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그런가, 어쩌면 이건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두번째 이유인 세계문학상 수상. 자그마치 상금이 1억이다. 우리나라 문학상 중 가장 큰 상금을 걸고 있는 것이 세계문학상이다. 김별아의 <미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신경진의 <슬롯>, 백영옥의 <스타일>,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까지 올해까지 총 5회가 되었다. 나는 사실 세계문학상을 신뢰하지 않는다. 3회 수상작 <슬롯>은 한마디로 '더럽게 재미없네'였고 이 상이 가지는 가치는 잘 모르겠다. 2회 박현욱까지는 그래도 어느정도 신뢰라는 부분이 잇었는데 갈수록 상업소설, 대중소설 시상의 냄새가 나서 영...

세번째 이유 소설의 영화화. 영화로 보다 말았는데 어째 영화보단 소설이 더 나은 것 같다. 책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 중에 딱히 영화가 낫다고 느낀 작품이 거의 없는 것은 내 탓인지, 영화제작사 탓인지. 아무튼 이건 영화를 마저 다 보고 이야기해야겠다. 암튼 검색해보니 확실히 영화리뷰가 책리뷰보단 월등이 많고, 대부분은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더라. 소재가 민감해서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영화가 포장을 수월하게 한 것 같진 않은 것 같다.

한번에 두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 모두 아내가 되고 싶지도 않을까. 일부일처가 허울에 불과하진 않을까. 인간 본성에 충실한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나는 이런 생각들을 했다. 주인공을 이해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물론 이것을 현실의 잣대로 끌어들이진 못한다. 난 아직도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이해하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진 않다. 나는 한사람을 평생 남자로서(남편이나 애 아빠가 아니라) 사랑하며 살길 바란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남편을 남자로서 사랑하길 바란다. 뭘 모르고 하는 말인가? 후훗, 내가 한번 이렇게 살아 증명해주면 되지 라고 소리칠란다. 난 아직 이런 생각을 깨고 싶지 않다.

이 책을 좋아할 사람은 적어도 두 부류는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 손예진을 좋아하는 사람. 축구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수확이 꽤 큰 편이고, 손예진을 소설 속 여자 주인공 인아로 생각하며 읽는 것도 아마 즐거울 것 같다. 이상한 여자라고 매도하기엔 여자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책 덮고, 얼른 월드컵이나, 유로시즌이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르셀로나건 레알 마드리드건, 나는 박지성 이후 맨체스터 팬이지만 말이다. 맥주 들이키며 축구 응원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