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정혜윤
푸른숲
2008

* * *

세번만의 기회로 읽게 된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다 읽은 지금의 기분이 어떻냐고? 홀가분하면서 묵직하다랄까.
작년에 스타벅스에 비치되어 있는 이 책을 붙잡고 읽어내려가다가 다 읽지 못하고 스타벅스를 나왔었다. 책장을 폈다가 다 읽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은 찜찜하니까 빌려왔었는데, 그맘 때쯤 해야할 일이 어찌나 많던지... 한장도 못 펴보고 고스란히 반납했었다. 그렇게 이 책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다시 빌려 끝내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이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 책이 썩 마음에 들어서였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PD인 정혜윤이 엮은이로, 이 책의 부제는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진중권을 시작으로, 정이현 은희경 신경숙 공지영 김탁환을 위시한 소설가들, 인순례 변영주 두 분의 영화감독, 문소리 영화배우, 이진경 박노자 교수까지 그들과 책에 대해 인터뷰 형식을 책이 진행된다. 사실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에서 나를 매혹시킨 독서가는 다름 아닌 '정혜윤'이었다. 언빌리버블! 그녀의 독서량이 상당하다. 이들 모두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책 이야기를 하는 게 어찌나 놀랍던지. 모든 섹션의 서두와 말미에 자기 스스로 이야기를 펴내려가면서 소설이나 시나 그림이나 매치될 수 있는 것을 갖다 쓰는데 정말 놀라울 지경이다. 편협한 나의 독서취향에 비해 그녀는 방대하게, 깊이있게 읽어내려간 것이 분명하다. 글을 또 어찌나 잘쓰는지. 아, 읽으면서 부러워서 혼났다.

인터뷰들에서 거의 고정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다. 언제 처음 책을 접하게 되었나,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책 읽는 취향, 어린 시절의 독서경향, 책이 가지는 의미. 이런 질문들을 나에게 한다면 어떤 말로 정혜윤 피디를 매혹시켜야하나. 책 속의 인터뷰어 상대자들은 하나같이 멋진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나 같이 특색있지만 하나 같이 말랑말랑한 감성을 가지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대답들을 줄줄이, 그것도 자신만의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내서 이야기하는데 매료될 수 밖에 없다.

어린 시절부터 집착적으로 책을 좋아했고, 다독했다는 공통점이 이들 모두에게서(정혜윤 피디를 포함) 발견되어진다. 역시 책읽기는 분명한 자산이다. 아, 나도 더욱 독서에 매달려야겠다고 의지 불끈불끈해진다. 소홀히 하고 있는 인문서적에 열을 올려 깊이 있는 독서를 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말이다.

진중권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아무 데나 가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면 다른 책의 인용으로 이뤄진 게 책'이다고. 아니나 다를까, 나는 옆에 독서노트를 놓고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을 줄줄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읽었거나 안 읽었거나,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읽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게 양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책 읽으랴 독서노트에 옮겨 적으랴 바빠지면서, 책을 읽다가 맥이 자주 끊기는 것 같아 나중에 한꺼번에 할 생각으로 하던 것을 중단하고 오직 책만 읽었는데... 나중에 책의 맨 뒤에 부록으로 보니 이 책에서 인용된 책이 목록화 되어있었다. 나의 수고로움이 허망해지는 순간이자, 그나마 반밖에 하지 않은 것에 위안을 얻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다 읽게 되어 '홀가분'하지만, '묵직함'이 느껴지는 건 읽어야할 책 목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해는 공부를 위한 서적들과, 여기서 언급된 양서들을 모조리 다 읽기에도 부족할 것 같다. 대충만 세어봐도 200권이 넘는다. 읽었던 책들 일단 목록에서 쓱쓱 지워두고, 읽지 않은 책들부터 읽어야겠다. 여기에 언급된 책들을 다 읽으면, 내가 조금은 더 박식하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후후, 역시 상상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