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거미 클럽

아이작 아시모프
동서문화사
1977


* * *


장르 소설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이 강한 편이라, 추리소설 쪽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추리소설들에 경우에도 읽어보지도 않고 내 타입이 아니라는 이유로 젖혀놓는 편이다. 그래서 정통 추리소설로 만난 첫 작품이 바로 이 책 <흑거미 클럽>이다.

지난 주말 공항에서 하루 새벽을 혼자 지새울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가방에 소설책 세권을 꾸역꾸역 넣었다. 사실 하루키 소설만으로만 넣었다가, 한권을 이 책으로 바꿔 넣었다. 마음을 고쳐먹지 않았더라면 사놓은 그대로 내 책장에서 전시용이 되었을 터인데 운이 좋았다. 그리하여 이 책을 공항에서 읽어내렸다. 24시간 오픈하는 맥도날드에 나와 어떤 아랍계 외국인 한명 이렇게 단 둘이 그 넓은 홀에 앉아서 나는 추리소설에 입문을 하였고, 아랍계 외국인은 노트를 펴놓고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도통 뭘 그리는지 눈길이 자꾸 갔는데 시간이 꽤 지나고 보니 우주인이었다. 우주인이 되고 싶은 외국인이었던 모양이다. 

커피를 두잔이나 내리 쏟아부으면서 책을 읽어나갔는데도, 잠이 쏟아져서(사실 며칠째 살인적인 스케줄로 잠이 부족해서 엄청 피곤한 상태였다) 머리를 굴리며 같이 추리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저 눈으로 읽어가며 어떤 식으로 사건이 풀릴까 좇는 수준이랄까. 같이 앉은 외국인이 3시 즈음 맥도날드에서 나감으로써 결국 혼자 남은 나는 혼자 있다는 불안함에 집중도는 더 떨어졌다. 그러니까 같이 추리하는 맛으로 읽는다는 추리소설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추리하며 추리소설을 읽지 못한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소설에 등장하는 소품이랄까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와는 너무 동떨어져있어서 당췌 뭔지 모르겠는 것도 있었다. 초반 이야기에 종이성냥이 등장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고, 영어 스펠링을 가지고 두운각운을 따지는 건 두번 읽어가며 입으로 소리내야 대충이나마 이해가 갔고, 서머타임은 우리나라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어서 떠올릴래야 떠올릴 수 없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제를 알지 못해 애초에 추리조차가 불가능했다랄까.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붙잡고 기어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것은, 이 소설이 매우 재미있다는 것이다.

흑거미 클럽이라 명명된 모임에 엘리트한 회원이 6명은 한달에 한번 모임을 갖는다. 음식 준비와 서빙을 맡은 헨리라는 급사에, 한번 모임을 가질 때마다 회원 중 한명이 한명의 호스트를 모임에 데려올 수 있어 항상 모임의 정원은 8명이다. 개인적인 일로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흑거미 클럽의 불문율은 모임시에 나온 이야기는 절대 밖에서 하지 않는다는 것과, 호스트에게 신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 이야기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같이 고민하여 해결을 보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건 항상 급사인 헨리이다. 실제 사건이 일어난 경위는 온통 그 사건을 경험한 호스트나 회원 중에 한명의 입을 통해 그려지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러니까 서사가 온통 대화문으로 이뤄지고 있음에도 지루하지 않다. 짧은 이야기 속에 하나의 사건을 그려내고 있어 이야기는 항상 속도감이 있고 퀴즈를 풀어가는 흥미로움도 한몫 한다. 문제를 푸는 사람은 늘 헨리여서 식상한 게 분명한데, 이야기가 후반으로 치닫으면 헨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가 궁금해지고 얼른 해결을 알고 싶다.

자세하게 그려진다고 할 순 없지만,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대화에서 묻어나는 성격이 꽤나 재미있다.

전체적 전반적으로 꽤나 흥미로운 것이다! 읽으면서 정말 그랬다. 컨디션이 더 좋았다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다. 시답지 않는 추리따위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꽤나 자만심에 차 있는, 이야기마다 작가의 변을 덧붙이고 있는 아이작 아시모프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1977년에(아니 출판되기 전에 이미 잡지에 연재되었으니 그 이전) 지금 읽어도 손색없는 추리소설을 써낸 작가에 대한 개인적 경외감이랄까. 

봄이 오고 있으니 당분간 말랑한 것들로 읽다, 여름이 오면 좀더 심오한 추리소설을 읽어볼 계획을 세웠다. 추리소설 입문서로서 <흑거미 클럽>이 제 역할을 다 해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