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장난


전아리 

문학동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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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를 처음 접한 건, 신문에서였고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김애란이 진행하는 문장의소리를 통해서였다.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하는 전아리는 발랄함 그 자체였다. 청소년 문학상 최대 수상자이며 두권의 책을 낸 전아리는 86년생. 아, 젠쟝. 어린 나이에 일궈놓은 게 많은 사람을 보면 저 나이에 난 뭐한 건가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심지어 이 소설집에서 전아리가 16살 때 쓴 소설도 있다.

라디오를 통해 들은 전아리에 대한 첫인상 '발랄함'을 기대하고 소설을 펴보았지만,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즐거운 장난'이라는 제목이 내 기대에 한껏 힘을 실어주었는데 소설은 어둡고 습습했다. 

소설집에 실린 10편의 단편들에게 보여지는 공통된 특징은, 등장인물이 매우 불우하다는 것이다. 사채업자, 엄마의 노름빚때문에 시골 저능 늦총각에게 시집가는 딸, 난쟁이, 트랜스젠더, 아빠가 누군지 모를 아이를 낳은 미혼모, 고아가 소설 속에 등장한다. 고르고 고른 인물일 텐데 어쩜 하나같이 낮고 어두운 사람들인지 86년생 맞아? 라고 반문할 지경이었다. 절대 경험해보지 못할 삶을 취재와 공부와 상상으로 엮어낸 인물들치곤 꽤나 현실성있다. 그래서 놀라웠다. 

서사구조에 있어서도 완결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 여느 기성작가 못지 않다. 구조 분석을 하자면 틈이 없을 정도여서 약간 틀에 박힌 인상도 주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만하게 써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싶어진다. 억지부리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써낸 이야기들은 매끄럽게 읽힌다. 

라디오에서 김애란이 취재는 어떤 식으로 하냐는 묻는 말에, 그냥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들어본다고 했었다. 트랜스젠더를 알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소재거리라든지 인물 파악을 한다고 답해서, 그런 취재를 거쳐 완성된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 싶었는데 그게 바로 <내 이름은 말야.>였다. <즐거운 장난>에 수록된 어떤 소설보다 인상깊게 다가온 작품이기도 했다. 시점의 설정이라든지, 부드럽게 넘어가는 장면구성이라든지, 세밀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많이 돋보였다. 다큐 동아리 회장으로 설정되어 있는 인물을 시점으로 잡아놓고, 트렌스 젠더의 행동에서 심리를 파악하는 소설의 전개는 적절했다. 시점 설정이 참 탁월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트렌스 젠더는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장면을 녹화하는 것이 나온다. 이 결말이 어느 책에서 읽은 것과 비슷한 거 같은데, 도통 생각이 안나서 아직까지 답답하긴 하다. 

요근래 젊은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신기하고 신선하다고 그렇다. 재주 많은 사람은 늘 부럽다. 특히나 글을 쓰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어린 나이에 이 정도면 훌륭하지, 라는 관대한 평가를 내려줄만큼 애정을 갖고 응원해줄 생각이다. 전아리의 다른 책 장편 <시계탑>을 읽어봐야겠다. 어떻게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