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왕정이 무너지고 대신 공화정부가 들어서면서 억울하게 단두대에 희생되는 프랑스 귀족들을 구하기 위해 활약하는 정체불명의 영국인 스칼렛 핌퍼넬과, 이 스칼렛 핌퍼넬을 잡기 위해 공화정의 수반 로베스피에르가 밀명을 내린 부하 쇼블랑이 꾸미는 스칼렛 핌퍼넬 체포작전 및 음모가 이 소설에서 가장 큰 핵심이며 이야기의 진행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도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부가 아니고 절반에 불과하다.

안티히어로격인 쇼블랑의 음모와 추격, 이에 맞서는 스칼렛 핌퍼넬의 모험과 위기가 절반을 채우고 있다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로맨스와 비밀은 소설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의 몫이다. 

쇼블랑은 한때 코메디 프랑셰즈에서 여배우로 활동하다가 굉장히 부유하지만 멍청하기로 소문난 영국귀족 퍼시 블레이크니와 결혼하여 지금은 퍼시 경의 아내가 된 마르그리트를 협박하여 그녀의 오빠 생 쥐스트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 대신에 영국인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를 알아낼 것을 요구한다. 마르그리트는 오빠의 목숨과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정의를 행하는 스칼렛 핌퍼넬의 목숨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구원을 청해보지만 예전에 쌓인 오해로 오래전부터 부부사이가 서먹해져있는 남편은 차갑게 돌아선다.

사실 소설을 중반쯤 읽었을 때에는 현명한 독자들은 스칼렛 핌퍼넬이 누구인지 이미 진작에 추측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특히나 마르그리트가 우연히 별꽃 문양의 반지를 발견하는 장면은 개연성을 완전히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야기가 후반으로 가면서 독자의 흥미와 관심은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에서 이제는 스칼렛 핌퍼넬이 쇼블랑의 추격을 어떻게 뿌리치고 달아나는지로 쏠리게 된다.

대담하게도 사형대로 끌려가는 인질을 구출하기 전에 미리 예고하고 빨간 별꽃 무늬를 남김으로써 빨간 별꽃이라는 별명이 붙은 스칼렛 핌퍼넬. 

그가 뜻이 같은 동지들을 모아서 그들과 함께 죄없는 귀족들을 구해내는 수법과 지혜와 변장술도 놀랍거니와, 그들이 이 일을 그저 재미삼아 한다는 것, 즉 말하자면 더이상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막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무런 사심없이 활약한다는 내용은 거슬러 올라가면 서양의 기사문학이나 그네들이 주장하는 기사도 정신, 혹은 의협심이 강한 의적의 전설 등에 맞닿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말하자면, 정의감이 분출되어 나타나는 주인공의 의로운 행동과 선행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으로 대별된다고 할 수 있는데 기실 이런 내용은 오래 전 인류 고래로부터 이어져내려오는 낭만적 영웅서사문학의 큰 줄기가 아니던가.  

바로 이런 유형과 패턴을 20세기 초엽에 작가 엠마 오르치가 이어받아 창조한 것이 스칼렛 핌퍼넬이며, 그에 자극받아 이어서 등장한 인물이 쾌걸 조로, 그리고 현대 우리에게 영화로 친숙한 슈퍼맨이나 배트맨의 모습을 통해 차례로 전승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하나. 스칼렛 핌퍼넬 캐릭터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색으로, 특징적이면서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소재 중 하나는 가면이다. 물론 스칼렛 핌퍼넬이 마치 쾌걸 조로나 베트맨처럼 얼굴에 직접 가면을 쓰고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본모습을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숨기며 행사하는 일종의 이중플레이적 가면은 그 가면이 벗겨지고 실상이 드러났을 때 주위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놀라움과 반전의 묘미를 맛보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스칼렛 핌퍼넬에는 그에 더하여 서로간의 오해가 풀리면서 여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이를 되찾는다는 결말이니 이는 더할 수 없이 행복한 해피엔딩이며, 최종적으로 스칼렛 핌퍼넬에게 엿을 먹고 물러나게 되는 안티히어로 쇼블랑의 퇴장과 함께 경쾌하게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