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중국화. 

동양의 전통적 회화와 회화사에 있어서 중국화가 차지하는 위치나 비중은 단연 크고 거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중국화를 저자 린뤄시(임약희)가 선(線, line)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책이 바로 이 <중국화- 선의 예술, 붓의 미학>이다.

 

중국화에서 선(線)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중국회화를 흔히 선의 예술이라 지칭하는데 이 선(線)이야말로 중국화에서 북종화(공필화, 문인화)와 남종화(수묵화, 사의화)를 모두 아우르는 핵심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화의 선이 가장 잘 표현된 장르가 바로 백묘화(먹의 선만으로 그리는 단색화)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백묘화는 거의 고사직전의 단계에까지 와 있으며 전통적인 필묵은 해체되고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중국화에서 볼 수 있는 선(線)의 미학과 기예, 도(道), 역사에 대한 관점에서 선(線)이 회화에서 어떤 식으로 변모해왔는지, 또 문학과 철학을 융합한 비교예술학을 토대로 하여 주제와 관련된 각종 이론, 비평, 텍스트를 살펴보고 있다.

특이한 점은 단순히 중국화 내에서의 화풍의 변화만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기 서양의 미술작품과도 그 내용과 형식 면에서 비교하고 있는 점이 조금 색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전체적인 전개과정은 먼저 선(線)의 의지와 선의 성격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이어서 호선(弧線)과 원선(圓線), 문인화가들의 정신세계, 벽화와 권축화(두루마리 그림)의 선, 선묘, 백화. 이공린의 백묘화인 <면주도>, 붓/먹/선의 멋 등의 차례로 전개된다.

 

선(線)은 고대 문명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데, 문명의 지혜와 취약함이 집약된 것이다.

고대 문명 중에서도 그리스는 선을 입체로 발전시켜 조각작품을 만들어냈고, 중국 회화는 특히나 호선(弧線)이 발달했다.

입체는 면과 면이 맞닿아 선으로 드러난 것이고, 평면은 선을 분할하여 생긴 것이다. 

호선(弧線)은 직선에서 발전한 것이고, 원선(圓線)은 호선을 심미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 것이다. 원선(圓線)은 서법과 중국화에서 완전무결하다고 인정하는 선이다.

선도(線道)는 선의 정신, (선체線體)는 선의 형식을 뜻한다. 

벽화의 선체는 호선을 도식화한 것이고, 권축화의 선체는 호선을 정신화한 것이다.

                                                                                                                 (p. 12~14)

 

이처럼 중국화는 옛부터 직선보다는 곡선을, 삼각형보다는 원형의 구도를 숭상했는데, 회화에서도 중국인의 전통적인 미의식과 중국의 철학사상인 '이(理)'와 '도(道)'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송대 이후부터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서 이제 중국회화는 모사가 아니라 작자의 정신세계를 담는 문인화로 발전하였으며, 서예와 서법의 곡선도 중국화에 차용되었다.  

예를 들면, 문인화는 사실적인 묘사에서 생략적인 묘사로 나아갔는데, 이러한 '일필초초(逸筆草草)'의 방식으로 속세에서의 초월과 해탈을 추구했던 것이다.

과거 중국에는 직업화가가 따로 있고 그림그리기를 취미로 향유하는 지배계층이 따로 있어서 회화장르도 공필화(북종화)와 사의화(남종화)로 나뉘었고 각기 화풍이나 표현방식이 서로 달랐으나 그럼에도 상호간에 영향을 끼쳐왔다.

벽화와 권축화도 마찬가지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벽화에서는 호선의 기능이, 권축화에서는 호선의 내적 의미가 중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둘 다 선을 중시하여 선(線)이 우선이요 색(色)은 그 다음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이었다.

여러 문인화가들의 작품을 책을 통해 시대별로 감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말로만 들었던 이공린의 작품을 대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중국화에서는 밑그림을 뜻하는 '본분'에서 '선묘'가 발전했고 거기서 다시 '백화'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 백화는 백묘화의 전신으로 백묘화는 먹물로 선만 그린 그림을 말한다.

이공린의 유명한 <면주도>는 당나라 장군 곽자의가 안녹산의 난 당시 중원의 반란군을 토벌하고 위구르로 돌아간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중국문화를 대표한다고 하는 백묘화인 <면주도>에서 이공린이 발휘한 표현력과 기교는 최고조에 달해 있으며, 당대인 송나라의 시대정신인 '이(理)'가 충실히 드러나 있다.

중국회화사를 꿰뚫는 '기운생동'에 대해서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중국화는 서양화처럼 사생에서 출발하지 않고 붓을 다루는 법부터 공부하는데, 붓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필력과 필세를 조절하는 실력에 따라 달라지고, 이 필력과 필세가 생동감을 자아내며, 붓의 리듬감과 운치가 심미적 수준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이 책은 300여 페이지로 판형이 크고 동서양(물론 주로 중국이지만)의 많은 그림과 조각, 공예품의 사진이 실려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그러나 각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과 철학, 윤리, 종교(유교/불교/도교), 학자들, 화풍, 예술가, 그림, 서법, 그림에 대한 해석 그리고 이들이 상호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등에 관한 내용은 심도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하건대 이 책은 절대로 쉬운 책은 아니다. 

쉽지 않다는 말은 곧 수준이 높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전공자만 볼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니 오해는 말기 바란다.

다만 이 책처럼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교양서적일 경우에는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