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이 저자의 저서 <무경십서>를 읽었기에 이 책도 즐거운 마음으로 펼치게 되었다.

<어떻게 세상의 마음을 얻는가>는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중국의 고전 '귀곡자'에 담긴 비책술 중 11가지를 뽑아내어 옛날 고사와 더불어 타인의 마음을 얻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계책을 현대적으로 풀어서 해석한 책이다.

'타인의 마음을 얻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계책'이라고 하면, 뭔가 권모술수적이고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냄새를 풍긴다고 미리부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마음을 얻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계책'을 현대적 용어로 달리 말하면 '설득' 또는 '설득의 기술'이 될 것이니, 그러면 이 책을 멀리했던 사람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을까.

2,500년이라는 까마득한 옛날에도 사람들은 지금의 현대사회와 다를 바 없이 설득에 연연하고 설득에 좌우되었음은 이 책을 읽어보면 더욱더 잘 알 수 있다.

 

<귀곡자>는 종횡가의 비조로 알려진 귀곡자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종횡가는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출현한 유명한 제자백가 중의 하나다.

유가, 도가, 법가, 병가, 종횡가....이 많고 많은 학단 중에서 특히 종횡가는 세 치 혀를 사용하여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고 외교와 정보력을 동원하여 상황을 파악하는 현실적인 정책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종횡가는 특정한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자신을 알아주고 중용하는 군주가 있다면 곧 그에게 달려가 충성한다하여 특히 유가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기실 종횡가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난 현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변화에 대응하고자 함이었다.

 

귀곡자에 실려있는 11가지 계책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의 마음을 자유롭게 열고 닫으며 대화를 이끄는 벽합술(闢闔術), 이야기를 뒤집으며 상대의 반응을 유인하는 반복술(反覆術), 상대와 굳게 결속하고 결합하는 내건술(內楗術), 벌어진 틈을 미리 막는 저희술(抵戱術), 상대를 크게 칭송하며 옭아매는 비겸술(飛箝術), 상대의 형세에 올라타는 오합술(逆合術),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는 췌정술(湍情術), 속마음을 털어놓고 속셈을 고백하게 만드는 마의술(摩意術), 상황에 맞게 유세방식을 달리하는 양권술(量權術), 시의에 맞게 계책을 내는 모려술(謀慮術),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적시에 결단하는 결물술(決物術)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21세기 정치,경제,사회에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것으로, 크게는 국가적으로 (혹은 기업적으로) 작게는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이 중에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속셈을 고백하게 만드는 마의술(摩意術)이었는데, 인용고사로는 잘 알려져있는 조선시대 한명회 이야기가 나온다.

문종이 승하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이를 틈타 왕위를 노리는 숙부 수양대군을 받들어모시는 책사인 한명회는 안평대군의 심복인 조번에게 접근하여 그와 친해진 후에 속셈을 털어놓도록 자극했던 것이다.

 

내면의 진심은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상대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마의술로 상대의 심리를 자극해 속셈을 털어놓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마의술의 목적이다. 마의술을 구사할 때 법칙이 있다. 반드시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진행하는 게 그것이다. 은밀히 상대의 욕망을 자극해서 본심을 탐지해나가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일단 반응하면 상대는 반드시 그것을 하려 든다.......여기서 자극해 유도하면 저기서 반응하며 속셈을 드러내는 까닭에 이에 부응해 화답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게 된다.

                                         p. 175

 

훗날 한명회는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오른팔이 되어 활약했으며 덕분에 재상의 자리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이다. 책사로도 유명했던 한명회는 아무래도 일찌감치 귀곡자를 읽으면서 마의술을 익히지 않았을까싶다.

이 귀곡자와 여기에 실린 계책들을 그저 옛날 이야기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전을 현대에 우리가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