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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중앙일보

 

제국의 슬픔
이중톈 지음,
강경이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440쪽, 1만6000원

결론부터 말하자.

오늘날 우리 정치에 관심있다면, 규모야 어떻든 조직을 이끌고 있다면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제목은 망해가는 제국을 다룬 대하소설을 연상시키지만 역사에서 뒤져낸 교훈을 담았기 때문이다. 재미도 넘치지만 시간이 없다면 다 읽지 않아도 좋다. 제 2장, 부패를 도운 변법의 아이러니와 제6장 아편의 전쟁과 전쟁의 아편만 읽어도 된다.

　11세기 중국 송나라 때 재상 왕안석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패한 개혁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총명하고 박학다식했으며 고결했다. 중국 역사상 수레를 이용하지 않았고, 첩을 들이지 않았으며, 사후에 유산을 남기지 않은 유일한 재상이었다. 그를 발탁한 신종(神宗)도 명군(名君)의 자질은 갖췄던 황제다. 기울어가는 나라의 문제도 제대로 인식했고 이를 개혁하려는 열의와 포부가 대단했다. 왕안석의 개혁안 자체도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이론상으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면서 백성은 잘 살게 할 조치를 쏟아냈다. 그런데 실패했다.

　인물을 잘못 쓴 탓이 컸다. 쓸만한 인재가 거의 없었다. 개혁의 오른팔이었던 여혜경조차 왕안석이 정치적으로 몰리자 반역의 누명을 씌웠던 소인배였으니 뜻은 높았어도 인사는 젬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개혁 실패의 근본 이유는 왕안석의 독단주의였다. 그는 건전한 동기로 출발한 만큼 계속 밀어붙이면 긍정적 효과를 얻는다고 믿었다. “천하의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들의 구설수에 주눅 들지 않고 옛 제도와 법규의 개혁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삼불주의(三不主義)’를 고집했다.

　농가를 10가(家), 50가씩 묶어 치안유지 조직으로 삼는 보갑법을 피하기 위해 손가락과 팔을 절단하는 백성들이 늘어난다는 보고를 받고도 무심했다. 현실을 무시한 개혁정책으로 부패가 들끓어 농민 천 여명이 집단 상경해 자기 집 앞에서 항의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사대부들의 의견도 신경쓰기 힘든데 백성의 여론은 거론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세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후대 자손들은 분명 나를 고마워할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이런 독선과 고집 때문에 반대파가 늘면서 결국 개혁은 모두 실패했다. 지은이는 말한다. “개혁의 성패는 도덕성과 무관하다”고.

1841년 벌어진 아편전쟁의 교훈은 더욱 황당하다. 청나라 총사령관 혁산은 영국군에 전패했다. 배상금 600만냥을 지불하는 수모도 당했다. 하지만 혁산을 포함한 수많은 관리들은 포상을 받았다. 영국군을 토벌하라는 황제 도광제의 엄명이 두려워 거짓 보고 덕이었다.

실제 아편전쟁 당시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해 본 중국 관원과 장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단다.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은 임칙서는 좌천되었다. 황제가 고집만 세운 채 눈을 감고 귀를 닫았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였다. 거짓 보고를 받고 “…따끔하게 본때를 보여 주었고 영국 오랑캐들이 그렇게 예를 갖춰 은혜를 애걸하고 있다니”하며 헛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그 후 청나라 운명은 모두 아는 바다.

　여기서 ‘슬픔’은 당연히 이뤄졌어 할 일이 어긋나거나 실패한 데 대한 아쉬움을 뜻한다. 인물· 사건·제도를 두루 다뤘는데 10개 장이 모두 값지고 흥미롭다. 지은이는 인세만으로 중국에서 손꼽히는 부호가 됐다는데 책을 읽으면 “과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 현실이 얼비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