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선입견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 선입견은 때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상을 결정하고 미셸과 함께 헤어샵으로 향했다.

감독은 영어로 미셸 뿐만 아니라 현지 모든 스텝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나? 영어 잘한다.

‘스탠바이...레디...액션...컷...오케이...’ 

다 영어다...-.-;;

영어를 잘하는 PD와 함께 있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지만 미셸 입장에선 불편할 수도 있을 법 했다.

좋은 작품을 찍기 위해선 모델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컨디션을 최상으로 맞춰주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헤어스타일을 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헤어스타일리스트와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미셸이 나서서 자신이 직접 통역을 하겠단다. 오홋~@.@

내게 스타일이 정리된 사진들을 가져와 이것저것 보여준다.

자긴 이런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데 어떠냐? 머리 컬러는 이게 어떻겠느냐...

난 ○○○ 좋아하는데... 사진첩에 있던 한국인 연예인 사진들을 신이 나서 보여준다.

서점 한 구석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보며 즐겁게 수다를 떠는 하얀 교복의 여고생...

한국에서 미리 들었던, 미리 짐작했던 미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이미 나 또한 그녀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녀와 마주섰던 건 아닐까.

누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 준 적이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일을 즐기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촬영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미셸의 시작은 낯설고 수줍었지만 그녀는 차츰 촬영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 컷은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 번만 더 찍으면 안 되겠냐고 한다.

NG 한 번 낼 때마다 천 원씩 내기로 했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런 가벼운 농담이 때론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 놓기도 한다.

‘이쁘다! 멋져! 그렇지~’

연신 터져 나오는 주변의 추임새에 미셸은 상기되어갔다.

모델로서 신체 조건도 훌륭했으며 다양한 포즈와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ok사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미셀은 수줍은 듯 엄마, 아빠에게 달려간다.

아빠의 어깨를 때리며 장난을 치며 웃는 미셸...마냥 좋아 허허허 웃고만 있는 아빠...

엄하고 까다로울 것 같았던 미셸의 아버지 또한 딸의 재롱을 한없이 깊은 미소로 바라보는 따뜻하고 자상한 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오후 느지막이 미셀의 어머니가 미셸이 좋아한다는 떡볶이와 순대, 떡을 가져와서 스탭들에게도 들고 오셨다.

촬영 중 늘 포근한 미소로 묵묵히 딸의 곁을 지켜주던 미모의 어머니...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빛... 따뜻한 가족의 모습...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의 가족은 평범한 가족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왠지 딱딱하고 서로 정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고 대화도 거의 없을 것 같았는데...

계약상 촬영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아무리 서둘러 찍어도 항상 부족한 게 시간이다. 감독으로서 욕심나는 컷은 아직 남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미셸의 아버지가 내게 넌지시 다가와 ‘미쉘이 너무나 재미있게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 미셸도 더 찍고 싶어 하니 시간 개의치 마시고 더 찍으시라’고 한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칼로 잰 듯 계약에 의해 움직이는 서양사회에서 에이전시의 반대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고충에 대한 깊은 배려와 한국인의 정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안타깝게도 근래 그녀의 소식을 접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것일까?

왜?

1등을 하지 못해서?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1등만을 기억한다. 아니... 강요한다.

1등을 해야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물론 그녀가 골프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건 사실이다.

대회 결과가 신통치 않다고 혹시 그녀 자체를 혹평하진 않았는가?

그녀는 아직 떡볶이와 순대를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만18세의 소녀이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주어 질 것이고 머지않아 그 기회를 잡을 것이라 믿는다.

올 해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 박찬호 선수처럼...

애정 어린 눈으로 좀 더 지켜봐주고 응원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본 미셸은 운동 탓에 손이 안 예쁘다며 뒤로 감추던 그 나이답게 밝고 순수한 수줍음이 매력적인, 예쁜 10대의 소녀였다.

사람은 사람을 ‘선입견’이란 안경을 쓰고 본다.

이 녀석은 굴곡이 심해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참매력을 발견하고 싶다면,

우선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란 안경을 벗어 버려야 할 것이다.

  김동한 감독 | 광고대행사 대홍기획, 휘닉스컴, TBWA PD 재직, 현 나인하프필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