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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젊은 아내의 죽음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1970~8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가 남긴 끔찍한 상흔에 관한 고발,

그 과정에서 결코 잊히지 않을 물리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사망-실종자 가족들의 비극,

그리고, 정신을 파멸시킬 만큼 극단으로 치닫는 사랑과 질투에 관한 현미경 같은 묘사 등

다양한 서사들이 동시에 진행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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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미스터리로 시작됩니다.

50대의 정신과 의사 비토리오는 젊은 아내 리산드라 살인범으로 체포됩니다.

오랜 불화, 성폭행 흔적이 없는 사건 현장 등 모든 정황이 그에게 불리할 따름입니다.

한편, 군부독재 시절 딸 스텔라를 잃은 뒤로 엉망이 된 삶을 살아왔고,

결국 5년 전부터 비토리오에게 진료와 상담을 받아오던 에바 마리아는

그의 무죄를 믿으며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진범을 찾는데 전력을 다합니다.

비토리오에게 진료를 받았던 여러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떠오르지만

에바 마리아는 죽은 리산드라에 관한 불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정보들,

즉 그녀의 불같은 사랑, 기이한 일탈과 불륜, 비정상적 질투에 관해 알게 되면서

수사에 혼선을 겪게 됩니다.

수감된 비토리오는 오직 에바 마리아의 수사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어느 날, 경찰이 에바 마리아의 집을 급습하면서

리산드라 살인사건은 전혀 예상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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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요염함, 우아함과 순수함을 겸비한 한 젊은 여인의 미스터리한 죽음,

유력한 용의자이자 남편인 정신과 의사의 무죄를 입증하려 백방으로 노력하는 단골 환자,

그 환자의 마음병의 근원이 과거 군부독재 시절 딸의 실종에 기인한다는 점 등

작가는 불행했던 역사와 상처받은 개인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직조한 것은 물론

적나라한 치정극과 리얼한 심리극에 미스터리라는 포장까지 덧씌움으로써

여느 장르물과도 차별되는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자신이 저지른, 또는 자신에게 날아든 참혹했던 사건들로 인해

하나같이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환자들’입니다.

군부독재의 고문-학살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범죄, 배신, 불화, 자학 등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해 ‘환자’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환자들’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리산드라의 죽음과 연관 있는 인물들입니다.

용의자인 ‘환자들’을 묘사하기 위해 그들의 과거사와 트라우마가 디테일하게 서술되다 보니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분위기는 무척 몽환적이거나 우울함 그 자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독자 역시 “누가 리산드라를 죽였는가?”보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은 과거사와

그로 인해 비틀어지고 일그러진 현재의 심리 묘사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서사는 심리극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책읽기가 되겠지만,

깔끔하고 선명한 미스터리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불편한 책읽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심리 미스터리와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의 상흔을 ‘결합’하려는 작가의 욕심이 과했던 탓인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바구니에 담으려 했다는 인상이 강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어떻게든 개인-역사-심리-사건이 서로 결합돼있긴 한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결합력이 점점 느슨해지거나 산만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70~80년대 남미 독재에 관한 영화를 여러 편 본 적이 있어서 나름 엔딩을 예상해봤지만,

작가는 후반부에 이르러 전혀 예상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급선회했습니다.

이에 관해 뒤통수를 치는 훌륭한 반전으로 평가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어쩌면 반대로 아쉽게 여긴 독자도 꽤 있을 것입니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느슨하거나 산만한 결합’의 산물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정신과 의사 비토리오의 치료기록에 등장하는

여러 환자들의 불행하거나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관한 리얼하고 적나라한 묘사들이었습니다.

특히 젊은 여자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힌 채 ‘노화’라는 자연의 섭리에 저주를 퍼붓는

한 노파에 관한 기록은 몇 번이나 되읽고 싶게 만들 정도로 압권이었습니다.

심리 미스터리에 거는 독자의 기대와 눈높이는 일반 미스터리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비밀 아파트’는 심리 미스터리로서 그만의 독특함을 자랑하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애초의 높은 기대감에 비해 아쉬움이 남은 작품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 넘치는 필력을 자랑한 작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남았는데,

‘비밀 아파트’ 이전에 엘렌 그레미용을 세상에 널리 알린

‘비밀 친구’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너무 큰 기대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그녀의 데뷔작을 읽다 보면

‘비밀 아파트’에서 놓친 그녀만의 미덕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