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al Killer(연쇄살인범)의 포르노를 대필해주는 Serialist(연재물 작가)의 이야기라 그런지,

최근 읽은 작품 가운데 폭력성과 선정성에 있어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작품입니다.

연쇄살인범의 범행은 거의 난도질 수준이고,

주인공이 대필하는 포르노는 ‘19금’이라는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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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필명으로 포르노부터 SF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3류 연재물을 기고하는 해리 블로흐는

사형집행을 목전에 둔 희대의 연쇄살인범 대리언 클레이로부터 황당한 부탁을 받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자신에게 ‘러브레터’를 보내온 여인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한 뒤,

자신과 그녀가 주인공인 포르노 소설을 써달라는 것입니다.

그 대가는 자신이 저지른 연쇄살인 이야기를 독점적으로 출판할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하지만, 포르노 대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10년 전 클레이가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형태의 연쇄살인이 일어납니다.

클레이의 변호사 캐롤은 즉각 사형집행을 유예해줄 것을 요구하고,

당시 클레이를 체포했던 FBI요원 타운스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집니다.

 

희생자들을 가장 먼저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 선상에 오른 해리는

자신의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는 15살의 부잣집 딸 클레어,

10년 전 클레이에게 쌍둥이 언니를 잃었던 다니엘라와 함께 비공식 수사를 시작합니다.

FBI의 미행과 정체불명의 괴한의 습격 등 온갖 고비를 넘긴 끝에

해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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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습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3류 연재물 작가 해리 블로흐를 비롯,

어딘가 롤리타(?)의 냄새를 풍기는 15살 매니저 클레어,

희생자의 동생이자 스트리퍼이며 해리와 로맨스를 나누는 다니엘라 등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연쇄살인범의 포르노 대필’이라는 선정적이지만 특이한 소재,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자의 수법과 명백히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연쇄살인의 발발,

그리고, 10년을 복역한 사형수가 실은 무죄였는가, 라는 화두 등

그야말로 재미를 위한 설정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으며,

엔딩을 장식하는 반전들도 크게 무리 없이 읽혔습니다.

 

형식이나 구성면에서도 독특한 점이 눈에 띄는데,

해리 블로흐가 다양한 필명으로 연재한 여러 연재물이 액자소설처럼 배치되어 있어,

마치 극중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잡지 속 원색적인 상담코너인 ‘잡년 조련사’에서부터, 뱀파이어, SF, 수사물에 이르기까지

해리 블로흐의 작품이 일부씩 발췌되어 실려있는데,

딱히 메인 스토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들은 아니지만,

주인공 해리 블로흐의 ‘취향’과 작가 데이비드 고든의 ‘작가론’을 살펴볼 수 있어서

일종의 덤이나 부록처럼 소소한 재미를 전해줍니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독자들의 평을 보니 조금은 호불호가 갈린 듯 보였습니다.

페이지가 안 넘어간다, 반전이 무리해 보인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과하다, 등이

비호감을 표현한 서평의 주된 내용이었는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저 역시 조금씩이나마 동감하는 부분들이었습니다.

 

‘페이지가 안 넘어갔던’ 이유를 굳이 꼽자면 두 가지 정도인데,

첫째는, 해리 블로흐의 발췌된 연재물들이 구성 자체로는 독특함을 지녔지만,

내용은 ‘사족’처럼 느껴지고, 분량 역시 적잖이 할애됐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발췌된 연재물이나 본문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가 데이비드 고든의 ‘작가론’이

약간은 현학적이면서 동시에 ‘강요하거나 가르치려는’ 느낌을 줬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이다 보니 그런 언급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재미나 재치의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반복된 점은 무리수였다는 생각입니다.

 

‘무리한 반전’에 대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못 하겠지만,

단서나 논리보다는 ‘깨달음 또는 우연한 연상’에 주로 의지하다 보니

독자에 따라 ‘과도한 비약’ 또는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 보일 여지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또, 끝날 듯 끝날 듯 하면서도 여러 차례 반전이 반복되다 보니

마지막 반전에 이르러서는 ‘이건 사족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종합하자면, 욕심은 이해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 옥의 티랄까요?

발췌한 연재물도, 과도한 작가론도, 거듭된 반전도 대체로 적정량을 조금씩 초과한 탓에

긴장감과 몰입감, 페이지 터너로서의 힘을 손해 본 게 아닌가, 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신인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꼭 그럴 필요나 당위성은 없지만),

그만한 아쉬움은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뿐 아니라,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필력으로 볼 때

후속작을 기대해도 좋을 만큼 뛰어난 스토리 텔러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가난한 중년작가 해리 블로흐와 똑똑한 15살 부잣집 딸 클레어의 콤비 플레이 역시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매력적인 조합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