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민음사의 독주 체제였던 국내 출판사의 기획에 의한 세계 문학 전집 시장에 2~3년 전부터 문학동네와 열린책들, 시공사 등이 앞다투어 뛰어듦으로써 일거에 도서 목록이 풍성해졌죠. 그중에서도 문학동네와 시공사의 세계문학 전집은 수 십년 전부터의 스테디셀러들이 여전히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다분히 식상한 느낌을 주는 민음사와 열린책들의 전집이나 명성이 걸맞지 않게 국내 발간 목록들은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펭귄 클래식과는 달리, 그동안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작가와 작품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에서 현재의 세계 문학계의 흐름을 동시대적으로 조망한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계의 스펙트럼을 큰 폭으로 넓히면서 문학 독자들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세계 문학 전집들 중에서 시공사의 ‘세계 문학의 숲’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는데, 2010년 8월에 알프레트 뒤블린의 대작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으로 첫 발걸음을 땐 시리즈의 최신간인 017과 018로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권과 2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에밀 졸라가 발자크가 ‘소설은 한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엄격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직접 실천했던 ‘인간희극’에 영향을 받아 28세 때인 1868년부터 구체적인 구상과 준비를 하여 제2 제정 시대를 배경으로 루공 가와 마카르 가 사람들의 5대에 걸친 이야기들을 1871년부터 1893년까지 매년 한 권씩, 총 22년 간에 걸쳐 모두 20권의 연작 소설로 그려낸 명실상부한 그의 라이프워크인 ‘루공-마카르 총서’에는 <목로주점>과 <나나>, <제르미날>, <대지> 등 에밀 졸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걸작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데,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이 시리즈의 열 한 번째로 1883년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루공-마카르 총서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루공 가와 마카르 가의 주요 인물이 중심적인 인물로 등장하지 않고, 표면적으로는 두 가문의 접점에 위치한 ‘나쁜 남자’ 옥타브 무레와 ‘이상적인 여성상’인 드니즈의 애정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사실상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백화점’입니다.

 

에밀 졸라가 엑상프로방스를 떠나 막 파리로 왔던 1858년 무렵은 1853년부터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조르주 외젠 오스만 파리 지사가 강력하게 추진한 파리의 ‘도시 현대화 프로젝트’를 통해 개선문 광장과 생제르맹 대로, 생미셀 대로, 파리 오페라 극장과 센 강의 다리, 공원들 등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파리 건축물의 60%가 완전히 새롭게 건설되는 혁신적인 변혁기의 한 복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 현대화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출현한 것이 바로 1852년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몽 마르셰 백화점을 비롯한 루브르, 사마리텐, 갤러리 라파예트 같은 현대적인 백화점들이었습니다.

 

졸라는 그의 부인이 단골이었던 몽 마르셰와 루브르, 플라스 클리시 등의 백화점들을 한 달 내내 하루에 대 여섯 시간씩 면밀하게 관찰하고, 당시에 범람하던 신문과 광고지 등의 자료와 정보들을 수집하고, 매장 책임자나 판매원, 건축가 등 다양한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방대한 자료를 축적한 후, 그것들을 토대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썼습니다.

 

 

졸라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에 막 화려하게 부흥하기 시작한 상업 자본이 창출해 낸 욕망의 대중적인 공간인 백화점과 그 매커니즘을 구석구석까지 면밀하게 해부하여, 새롭게 등장한 고급화된 이 대량 소비 거점이 당시의 부르주아 계층의 욕망과 허영심, 신분 상승 욕구 등을 자극하여 물질적 욕구와 정신적 갈망을 해소시켜 주는 ‘현대적 산업의 대성당이자 소비의 궁전과 신전’으로 작동하는 ‘스펙터클한 공간’의 사회적 의미와 그 이면의 물신주의를 날카롭게 포착해 그려냈습니다.

 

졸라가 이 작품에서 세밀하게 묘사해 낸 현대 상업주의와 물신주의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은 150년이 지난 지금 읽어봐도 여전히 신선하며 날카로워서 이 작품이 이번에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다는 사실이 놀라움과 반가움을 함께 줍니다.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보아 온 어떤 국내책들보다도 아름다운 표지 디자인 때문인데, 권말에 작품 해설, 졸라의 연보와 함께 수록되어 있는 23쪽 분량의 컬러 도판도 만족감을 더해줍니다.

 

hajin

 

 

에밀졸라, 루공마카르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