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주를 깔아줘야 오도시가 펑 터진다, 무슨 주문같은 이 글은 개그계에서 쓰는 말이다. 물론 일본의 잔재로 써서는 안되지만 개그맨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니주'는 상대 개그맨이 강력한 웃음을 터뜨릴 수 있게 웃기기 전에 미리 깔아주는 것을 말한다. '오도시'는 강력한 웃음이다. 여기에 약하게, 잔잔하게 터지는 웃음을 칭하는 '시바이'를 포함할 수 있다. 이 삼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는 개그가 KBS 2TV '개그콘서트-달인'이다. 김병만은 '오도시', 바보 수제자 노우진은 '시바이', 사회자 류담은 '니주'에 속한다.

"축구에서 골 넣은 사람만 기억하지 패스했던 사람은 기억 못하잖아요" 류담은 축구에 빗대어 자신의 위치를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축구에서 골을 넣어 점수를 낸 스트라이커만 기억될 뿐 도움을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개그도 마찬가지다. 웃기는 사람을 기억하지 웃기는 데 도움 준 사람을 관객들은 기억 못한다. 하지만 임하룡이 없었다면 심형래가 없었고, 류담이 없었다면 김병만이 없었듯이 '받쳐주는 캐릭터'가 없으면 인기 개그 캐릭터가 등장하기 어렵다.

니주는 마치 비타민과 같다. 비타민이 결핍되면 각기병에 걸리기 때문에 아주 적은 양이라도 항상 우리 몸에 있어여 한다. 니주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든 니주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중요한 역할이기에 그러하다.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그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존재란 없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고, 맡은 일을 할 때 모두가 빛이 나는 법이다.

<심야 치유 식당>, <도시 심리학> 등으로 꽤나 유명세를 탄 저자는 TV 속 예능 프로그램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특별한 뭔가를 깨달았다. 그간 자신이 예능을 통해 지친 마음을 치유받았고, 나를 지켜내는 힘을 키웠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배웠고, 놀 땐 놀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예능에서 게임을 빼면 '앙코 없는 찐빵'이 아닐까.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에선 몇 가지 간단한 규칙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게임들이 등장한다.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은 야외 취침, 까나리 액젓 마시기, 동절기 얼음물 입수 등의 벌칙과 함께 당해 프로그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위니콧은 놀이를 하면서 아이가 자란다고 말한다. 공부가 아닌 놀이를 통해 현실을 배우고, 자라면서 겪는 일상의 좌절을 놀이가 제공하는 승리의 기쁨으로 치유받으며 극복한다고 한다. 세상의 아이는 모두 놀면서 배운다. 이처럼 놀이는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그리고 즐거운 행동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의 주목을 끄는 것 중 하나가 '고백'이다. <놀러와>, <강심장>, <라디오스타>, <해피투게더>, <승승장구>, <무릎팍도사>, <힐링 캠프> 등의 프로그램에서 충격적인 고백이 심심찮게 방송을 탄다. 사실 자신만의 비밀을 알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알려진 후에 후련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후폭풍에 시달린다.

자기 폭로를 듣고 나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한다. 발설한 이에 대해 호감과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말하기 힘든 것을 고백한 행동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상대가 자신을 신뢰한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고 인식하며 뭐라도 돌려줘야 한다고 여긴다. 이를 '폭로의 상호 작용'이라고 한다.

고백은 중요한 힘을 갖는다. 그래서 잘 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토크쇼의 경우 이를 이끌어 내는 사람이 바로 MC다. 고백할 준비를 해왔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못하면 내뱉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백을 잘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상대가 고백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예능의 핵심은 웃음과 즐거움이다. 기본적으로 가벼움을 지향한다. 예능을 보면서까지 머리를 심하게 쓰거나 복잡한 계산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 잠들고 싶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왜 웃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야 좋은 것이다.

스트레스의 배출구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다. 세상과 나를 이해하는 데 세 가지의 방향이 있다. 첫째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고, 둘째는 옆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앞을 보는 것이다. 지금의 나도 물론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나'이다. 현재에 집착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숲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치와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야 희망이 보인다. 희망은 앞날에 대한 기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몇 년간 감금되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삶의 의미'라고 했다.

자신의 삶의 태도가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미래 지향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친 낙관도 금물이지만, 지나친 부정은 더 더욱 곤란하다. 불가능은 어차피 바꿀 수 없는 상수常數다. 그러므로 굳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금 희생하면 더 나은 미래의 삶이 온다는 가혹한 미래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꼭 해야 할 것들 중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의 비중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능은 내 마음의 힘을 키워준다. 시간 낭비 한다는 죄책감, 쓸데없는 걸 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가슴 펴고 예능을 보고 즐기자.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온갖 잔소리를 퍼붓고, 심하면 리모콘까지 빼앗는 아내에게 이 책의 일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