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으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우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

- 본문 383에서

그 덧없는 노력인 여행. 그러나 그 얼마나 설레이는 단어인지.

게다가 유럽여행. 어이쿠 이건 더 설레이다 못해 심장이 쿵쿵대는 단어다.

빌 브라이슨이 90년대 초반 유럽을 돌아다니며 쓴 여행기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한국에 소개되어 출판되다니. 빌 브라이슨도 깜짝 놀랄일이 아니었을까? 해외여행자유화가 되고 나서 다들 한 두 번쯤의 해외여행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지금에서야 사람들이 공감하며 웃으며 읽을 수 있기에 이제야 겨우(?) 출판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님 우리가 빌 브라이슨의 유머에 웃어줄 수 있을 만큼 그들과 동화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여행을 하고 난 지 2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책이니 여행 정보를 원하는 이들이 볼만한 그런 책이 아니다.(유럽연합이 생기기도 이전의 유럽여행이라구~) 빌 브라이슨이 소개하는 여행은 새롭고 낯선 곳,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에 둘러쌓이는 일을 스릴넘치는 일이라 여기며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둘러싸여 산책을 하고 힘들 땐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가고,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길거리를 구경하고, 혼자 몽상과 공상과 상상을 해가며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과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 이상하지만 즐거운 '빌 브라이슨'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그만의 그 시시하고 소소한 여행의 재미와 유머를 그저 만끽하기만 하면 되는 책인 것이다.

그는 여행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낯선 상황, 낯선 문화에 대해 어떤 사회적 정치적 기준이 나닌 자신의 개인적인 잣대나 기준으로 들이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떤 면에서 지나치게 편파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때론 선입견과 오해로 가득하기도 하다. 그의 유머를 알고 이해하는 이들에게는 즐거운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조금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그의 유머나 그의 여행기는 어디를 가나 느껴지는 좀 뻔뻔하고 좀 느긋하고 좀 어리석고 좀 어이없는 미국인들의 그것이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 넘치는 주인의식?으로 그들의 도시행정, 정치, 문화에 환경까지 자신의 문제인 양 참견하고, 영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면 왜 영어를 못하느냐고 뻔뻔하게 툴툴대며, 유머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나 그닥 유머감각이 없는 이들은 어딘가 큰 결점이 있는 사람들인양 어디서나 농담을 던지고, 그들이 늘 먹던 맥주와 햄버거와 피자 커피 콜라가 없는 곳은 덜 문명화된것으로 여기고, 어디서든 원하는 만큼 물을 쓰고 바라는 만큼 청결해야 하고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고 마시고 쓸 수 있을 때만 겨우 서비스에 만족하며, 그들의 방식대로 시끄럽고 벅적대고 요란해야 비로소 그것이 재미있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아주 재미없게 읽었냐 그건 아니다. 책은 재미있었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에는 그의 농담이 가득하고 그가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자신의 쩨쩨함과 소심함, 여행이라면 꼭 따라오는 온갖 실수담들과 어리석음 그리고 재미난 공상과 아름다운 여행길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행이란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떤 이와 가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지는 것임을 다시금 알려 준 책이기도 했다. 같은 곳에 같은 상황에 처한다 해도 어떤 사람이냐 따라 그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 지기 때문이다. 책을 덮었을 때,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 일단 주눅부터 들고 시작하는 우리네 여행, 서양중심세계사가 머리에 팍팍 박혀있어서 어디를 가든 감탄부터 시작하고 그다음에 부러워하며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과 멋진 생김새에 금세 주눅이 들고만다. 선진국이 되지 못한 국가의 억울함과 한스러움. 누가 누굴 개발하는지 모를 개발도상국으로써의 교훈과 배울 점을 가슴에 팍팍 새겨서 돌아오는 아시아 저기 한구석에 사는 한 사람으로써 가슴이 좀 아팠을 뿐이다. 난 그랬을 뿐이다. 여행을 돌아와서는 음, 유럽에서는 말이야~ 아메리카에서는 말이야~ 하고 한 삼사년은 유세를 떨어줄 그런 유치한 인간이기 때문이라서 말이다.

그러나

- 다락방서 허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