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전체(1120)

*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과격한 말이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꿈같은 말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열심히 일하려고 해도 자신이 일할 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이제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앞뒤 없이 그저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하는 자가 없다면 우리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집안만 해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이 없다면 우리가 누리는 그 모든것들과 일상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며 아예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인생을 꿈꾸게 만든다.

생산의 가치보다 소비의 가치게 훨씬 더 높게 평가 되는 이 이상한 사회.

 

주말에 장을 보러 갔는데 한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직원을 가리키며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나중에

저렇게 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아줌마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그게 어떤 일이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자식에게

이야기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싶어 순간 멍해졌다. 하긴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예전에는 너 공부안하면 나중에 청소부 할꺼야~ 라며 화를 내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학사 석사를 가진 청년들이 청소부를 하겠다고 10킬로 짜리 짐을 들고 전력질주하는 모습이

뉴스에 화젯거리로 나오는 희한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대체 왜 우리들은 노동과 일의 가치를 이렇게도 폄하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어렸을 때는 개미는 부지런한 일꾼으로 베짱이는 게으름뱅이로 그려졌지만

요즘은 베짱이는 예술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캐릭터도 변화되었다. 물론 그건 재미있는 관점이다.

그러나 베짱이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사이 묵묵히 일하는 개미의 노력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일과 노동에 대해 말하는 그림책을 모아 보았다.

 

 

이 그림책은 사계절의 일과 사람 시리즈다. 1편은 전에 소개했던 자장면집 이야기다. ^^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일과 사람이 떨어질 수 없는 것이고 일에 대해 알려면

일을 하는 사람을 들여다 봐야 한다.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다. 앞으로도 팍팍 나와주길 바라는 그림책 시리즈~

 

 

오래전에 나왔던 권윤덕씨의 <일과 도구>가 다시 길벗 어린이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일을 할 때는 저마다의 도구를 사용한다. 도구를 보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도 있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병원, 의상실, 농사, 화가의 작업실... 비단위에 그려진 수묵화의 느낌이

직업을 넘어선 일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정겹고 아름다운 권윤덕씨의 수묵화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더 좋기도 하다.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 보기에

아이들과 함게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정말 좋은 책이다.

스스로가 쓰는 다양한 도구들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 알 수도 있고 말이다

 

 

신발을 좋아하는 정해영작가의 <무엇을 할까>는 표지에 있는 커다란 신발이 알려주듯이 일과

직업에 따라 달라지는 신발에 대해 알려주는 그림책이다.

뻥뻥 공을 차는 신발, 뜨거운 불길 속을 달리는 신발, 얼음판 위를 쌩쌩 다니는 신발...등등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신발의 모습을 통해 일에 대해 알게 한다. 그러나 유아용 책이라서

신발과 상황 직업을 찾아내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었다.

 

 

뭐 워낙에 유명한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온갖 집안일을 홀로 다 하는 엄마 그리고

엄마를 부려먹기만하는? 아버지와 아들들이 등장하는 그림책, 어느날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아들은 점점 돼지로 변해간다. 가사노동에 대해서 집안과 일상을 꾸려가는 것은

가족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유쾌하고 두렵고 재미있게 그려낸 책이다

누구나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환하게 웃는 거라는 걸 마지막에 차수리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

땀흘려 일하는 사람을 얕보는 사회는 진정 제대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내 아이는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모가 많은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다 일하지 않고 놀고 먹으려고 하는 사회 역시 제대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그 일에서 보람을 얻어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그게 우리가 꿈구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남의 일과 직업을 폄하하면서

나의 일을 제대로 평가받길 바랄 수 있을까... 괜히 머릿속이 복잡하다.

일과 직업에 관한 책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과 직업 노동 그 자체에 대해 먼저 생각이 정립된 이후에 그런 책들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원하는 꿈이 뭐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어른들은 쉽게 말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제대로 고민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런 말은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들이 있는데 부모와 아이들이 바라는 직업들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 획일적인 생각들에 대해서도 정리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 다락방서 허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