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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울타리 밖 세상이 어떤지 사람들의 보이는 모습 그 너머가 진짜 어떤지 모르던 시절엔 행복했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유년기는 길지 않다. 세상의 단맛 쓴맛을 다 보고 이미 알 걸 다 알고 나면

차라리 맘이라도 편하고 포기할 것은 이미 포기해 버릴 수 도 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어렴풋이 세상이 어떤지 사람들이 어떤지 알게 되는 그때부터가 바로 우리의 유년시절이

끝나는 그 순간이다. 이제 아이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 어른도 아니다.

당신은 기억하는지? 당신이 어렴풋이 얼마간 세상을 사람들 마음의 어둠을 알아버린 그 순간들을.

 

<달과 게>를 읽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세상이 어른들이 무척이나 무섭고

동시에 또 많이도 미웠던 내 초등학교 시절의 어떤 날들이...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세상은 동화처럼 이야기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의 마음은 내가 짐작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행복한 유년은 이미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순간.

아직 깨어나고 싶지 않지만, 이미 세상과 사람들 이면의 깊은 어둠을 보아버린 직후의 혼란.

든든하고 거대했던 가족의 울타리가 실은 너무 낡아 이미 반쯤은 무너져 버렸음을 마주해야 하는,

내가 있는 이 곳 이 세계를 바꾸고 싶지만 무엇하나 바꿀 수 없고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그 무력감과 절망. 사춘기는 오히려 그 다음이다. 자신을 둘러싼 그런 현실과 상황에 대해

강렬하게 저항하거나 반항하는 시기니까. 그러나 사춘기가 오기 이전 세상과 나를 바꿔보려고

발버둥치기 전의 분하고 슬프고 억울하고 비통한 무력감에 휩싸이는 시절.

책을 읽는데 잊었던 기억을 깨우고 말았다.

 

주인공은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아픔을 간직한 신이치. 그리고 신이치 할아버지가

몰았던 배사고로 엄마를 잃은 나루미, 부모에게 학대받는 상처를 간직한 하루야 세 아이다.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학교에서 배척당하고, 가족에게서 상처받는 마음들이

내밀하게 그려져 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고름으로 마음을 채워가는 듯 보이는 모습에

뒤로 갈수록 읽는 내 마음도 서늘해져 온다. 아이들은 바닷가에 모여 소라게를 가져다

산의 바위웅덩이에 모아놓고 소라게를 불에 태우며 소원을 빈다. 돈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작고 소소한 소원이 작고 사악한 일로 번져가고, 주체할 수 없는 악의에 찬 마음으로 변해간다.

신이치의 마음에 검은 잉크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듯이 악의와 상처로 번져가는 마음을

세세히 그려낸다. 그리고 그 마음이 너무 안쓰럽고 안타깝고 슬프고 또 괴롭다.

당신이 빌어본 가장 잔혹한 소원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 책의 뒷표지의 문구가 가슴을 쿵 하고

내려앉게 했달까.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그럼에도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더이상 아이도 어른도 아닌 미묘한 경계에 놓인 아이들이 선과 악의 알 수 없는 경계에서

헤매었던 아이들이 그래도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밀어내지 않아서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아픈 상처 속에서 절망하고 괴로워하며 희망을 찾아 헤매고,

다시 쓰러져 절망하고 발버둥치면서 어른이 되어야 할까.

왜 우리들의 인생은 짧고 행복했던 유년과

상처로 가득한 길고 긴 어른들의 날들로 이루어져야 할까.

우리는 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아닌 우리를 슬프고 힘들게 하는

것들을 통해서 성숙해 지는 것일까.

 

미치오 슈스케 <달과 게>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아직 선도 악도 아닌 그러나 그 모든 것이기도 한

그 혼란과 혼돈의 경계를 떠도는 나약한 마음들의 이야기다.

주말, 책을 읽다가 두어번 쉬었다. 잊었던 기억을 털고 다시 책을 읽었다.

근래 내 마음을 많이 흔든 책이다. 그러나 행복하게가 아니라 아프게 스쳐가는이야기다.

미치오 슈스케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의 다른 책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다 이렇게 아프지는 않겠지.

- 다락방서 허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