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모두 살인자라고 줄리엣은 생각했다. 모두 다.

그들은 여자들을 살해한다. 여자들을 손에 넣은 뒤 서서히 조금씩 죽인다.

- 본문 중에서

 

*

자신은 커서 성공한 여자가 될 거라고 모두들 말했고 자신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이렇게 별볼일 없는 일상을 살게 된 줄리엣의 절망감이 팍팍 묻어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고 여자들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남자들은 어떠할까? 여자들은 모두 끔찍한 조련사라고, 남자를 손에 넣고는 원하는 대로 조련하고 부려먹고 결국은 내버린다고 말하지는 않을까? ㅡ.ㅡ

 

런던 교외지역 알링턴 파크를 둘러싼 여자들의 우울과 권태로움으로 가득 찬 일상을 그려낸 이야기

<알링턴 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다. 반의적인 제목에서 알 수 있는?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여자들의 우울함과 권태로움으로 가득차 있다. 책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저마다의 실망과 저마다의 절망과 저마다의 괴로움을 안고서 일상을 살아간다. 그녀들은 모두 진정한 자신의 삶은 곳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 괴로워하며 아슬아슬한 일상의 하루를 버틴다. 우울의 고리를 끊어낼 수 없을 것처럼, 절망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게 늘 기운이 넘쳐날 수 없는 것처럼 늘 우울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우리들은 행복한 순간에는 그 행복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불행한 순간에는 그 불행이 끝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그건 좀 어리석지 않나, 우리들의 행복에도 결국 끝이 있듯, 우리들의 불행에도 역시 끝이 있다. 문제는 행복도 불행도 아닌 그 사이에 담긴 무수히 많은 일상을 둘 중 어느 편에 더 가깝게 채워 가는 가에 있지 않을까?

 

삶의 이유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권태로움과 슬픔이 한 권 가득 담겨 있는 이 책의 우울함을 끝까지 다 읽어내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울한 이야기를 읽어가는 데에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울한 사람을 마주하는 데에도 그러한 것처럼. 그러나 우울한 사람과 우울한 책이 나쁜 것이냐하면 또 그렇지가 않은게 세상의 오묘한 맛이다. 책 속의 우울함을 통해서 자신의 우울함을 털어낼수 있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떤이는 책 속의 내용에 비해 자신의 우울함 정도는 별것 아닌듯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어떤 이는 책 속의 우울에 공감하며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덮고 그 우울을 털어낼런지 아닌지는 결국 독자의 몫인 것이다.

 그러면서 드는 나의 생각은 책 속에서 그려내는 그런 우울이나 괴로움 모호함 절망감들이 삶의 본질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울한 그  순간 우울함에 사로잡혀 인생의 벽에 부딪친듯 느낀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한 괴로운 감정들 역시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는 감정과 마찬가지로 삶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들일 뿐이다. 양쪽의 모든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극복해가면서 삶이라는 거대한 요리를 완성해 나가는 것일 뿐. 우리가  커가면서 인생의 맵고 달고 짜고 담백하고 쓰고 쌉싸름한 그 맛을 터득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역시 우리나라 작품이라 그런지 최근에 읽은 오정희의 <돼지꿈>에서 바라본 일상의 우울과 괴로움이 먼 이국의 알링턴 파크의 그녀들의 이야기보다 더 재밌고 공감됐다는 것이다.  근래 내가 읽은 책들 중 가장 우울한 책은 단연 레이철 커스크의 <알링턴 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였다. 우울한 이야기는 별로인 당신이라면 그닥 권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삶의 우울한 이면을 한번쯤 궁금해 하는 당신이라면~  

- 다락방서 허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