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서영은'이란 이름이 소설가 '서영은'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스무 살, 내가 세상에서 처음 문학에 관심을 가졌을 때 읽었던 이제는 내용도 잊혀지고 제목만 기억에 남은 '사다리가 놓인 창'의 작가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호기심이 생겼다. 김동리 선생님의 부인으로도 사람들의 뇌리에 큰 인상을 남긴 사람. 나는 그분이 산티아고를 향해 가는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했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분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의 나이가 67세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분이 언제 그렇게 나이가 들었는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풋풋하고 지금보다 더 순수하고 예뻤을 내 20대가 떠올랐다. 그 당시 함께 문학을 이야기하고 즐거워했던 친구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저자는 신인들의 소설을 심사하다가 자신의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자신을 발견했고, 그런 자신과 작별하고 신과 자신을 만나기 위해 순례길을 걸었다고 한다. '예술은 나를 남기는 것에, 종교는 나를 버리는 것에 헌신하는 것이에요.'라는 문장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질기고 때론 잔인할 정도로 힘들었을 작가의 삶에서 신발을 벗고 자신을 찾아온 하나님을 만났던 그녀의 평안함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떠나기 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유서까지 썼다는데 이미 떠나기 전의 그녀는 그 곳에서 죽고 또다른 자신이 되어 돌아왔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산티아고 가는 길은 그녀의 성지였고,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이 그녀를 만나주신 또다른 호렙산이 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를 향해 카미노를 걷는다 해서 누구나 신과 깊이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걸으면서 각자의 삶을 하나씩하나씩 되돌아 보고 자신이 만나기 가장 두려워했던 한 가지씩의 무언가를 대면하게 된다. 저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인도하고 계셨음을 직접 체험했고 그것을 글로 나누었다. 

 '카미노'는 참 신기한 힘이 있다. 카미노 위에 서는 사람들은 다 다른 이유를 안고 있다. 그 이유만큼 그곳에서 경험한 일이나 느낌, 만난 사람들이 다양하다. 그러나 저마다 자신을 만났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내가 읽었던 모든 산티아고 여행기들이 나에게 이야기한다. 너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이 책을 구입한 다음 날, 이제 곧 칠순에 이르게 되는 서영은씨의 인터뷰 기사가 내가 보는 중앙일보 신문에 실려 날아왔다. 이 책을 고를 때 '내가 꼭 저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사야 하나요? ' 라고 기도했었는데...

 2010년 6월 3일 산티아고를 향해 출발하는 나에게도 하나님이 찾아 오실거라고 믿는다.



산티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