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애국심(이것을 애국심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면)과 단결력은 그 상대가 일본일 때 한층 빛을 발한다. 일본을 상대로 하는 스포츠 경기라도 열리면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경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하는 경기가 되고 만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이나 중국이나 타국인건 다들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은 눈 뜬 장님이기를 자청한다. 과거가 남긴 상흔으로 인한 반감을 한 꺼풀 쓰고 바라보는 일본은 가식적이고 폭력적이며 아직도 군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일 뿐이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의 의식 속에 공고히 자리 잡은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1장에서는 쇠말뚝 담론과 조선 총독부 건물 파괴, 그리고 이영희, 전여옥, 김진명, 서울대 교수진 등 여러 저명인사들의 반일적 저술에 담긴 왜곡된 일본 인식을 비판하고 있다. 2장에서는 일본 문화 개방, 한일간 과거사 정리 등 대일 현안들의 전개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반일 민족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3장에서는 우리에게 하나의 일반화된 이미지로 자리 잡은 일본인들에 대한 인식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그것들이 합리적인 근거를 갖추지 못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허구’임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우리나라 반일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제는 그만 과거에서 벗어나고 차이를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워지는 대목이 많았다. 일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작가의 근거는 대체적으로 논리 정연하며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한 수긍할 만한 것들이다. 너무 지엽적으로 들어가다 보면 범하기 쉬운 전체 흐름을 잃는 오류에도 빠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나는 색안경을 끼지 않고 비교적 합리적인 눈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한 저자의 지적은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일본에 대한 여러 책과 저술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오랜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른 일본이라는 한 나라와 일본인이라는 수많은 개별적인 인간 군상들을 도매금으로 하나의 명제에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특히 3장을 읽으면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막연하게 일본 문화는 성과 폭력에 대한 표현 수위가 높은 저급한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일본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민족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줄 아는 신 친일파가 많이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저자의 용기는 이미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없이는 한 국가의 존립이 불가능해진 21세기에 꼭 필요한 태도이다. 특히 일본은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리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제 21세기와 앞으로의 먼 미래를 같이 살아나가야 할 동반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상처를 계속 끌어안고 그것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금 일본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선량한 일본인들에게 과거 전쟁을 일으켰던 일부 군국주의자들의 모습을 투영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역사의 적지 않은 부분을 공유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실과 가치판단을 정확히 하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정립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