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7시. 1월 23일. 날씨가 너무 추웠다. 밤이 될수록 기온이 점점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씨너스G 5관의 체감온도는 달랐다. 극장은 아담했고 청중은 진지했고, 작가는 열정적이었다. 무대 뒤에는 불꺼진 커다란 스크린이 하나 있었지만 결코 작가가 작아보이지 않았다. 현란한 조명도, 액션도, 음악도 없는 이 빈 공간에 작가는 단지 ’언어’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작가와의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대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른 것도 아니고 춤을 춘 것도 아닌데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공지영이란 작가에 대한 오해나 편견 같은 것도 무너졌다.

다른 어떤 말보다 작가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공지영 작가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첫번째, 돈을 벌어라. 둘째, 많이 읽어라. 셋째, 기다려라. 일단 돈을 벌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으므로 부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일들을 좀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며 백원짜리 하나에 얼마나 치사하고 목숨걸 수 있으며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 다음에는 많이 읽기. 자신도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는지 어느 날인가는 동네 슈퍼에 가는데 온 세상이 지문으로 보였다고 했다. 말은 모두 따옴표 안에 들어가 있고....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자신에게 온다고 했다. 파블로 네루다의 말이 생각났다. 시가 내게로 왔다. 라는 그 말. 정말 맞는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노동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한 여인의 눈물의 호소에 시위장에 머물러 있다가 구치소에서 1주일간 머물게 되었고, 그리고 집에 돌아간 후 2일 동안 120매를 토해내듯 써냈다는 작가. 그 작품이 바로 등단작 <동트는 새벽>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 무당처럼 신이 내려야 될 수 있는 것 같다. 뭐,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자리였을텐데 어깨에 힘을 빼고 (마치 이번 책 <즐거운 나의 집>처럼) 떨지도 않고 쉽고 재미있게, 정확한 발음으로 이야기를 작가는 역시 프로였다. 커다란 무대를 자신의 말 하나로 이렇게 꽉 차게 할 수 있다니. 힘이 있는 작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20살은 더 많을텐데, 200배는 더 에너지가 넘치는구나 라는 생각도. 아줌마의 힘인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은 ’엄마’의 힘으로 살아간다. 내 주변만 그런가. 아버지들이 더 많이 벌 수는 있겠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의 어머니들의 생활력은 그야말로 놀랍다. 본능이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식을 지키려는 본능. 작가 공지영도 작가이기 전에 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고 글은 그 수단이기도 하다고 한다. 만약 글이 돈이 되지 않았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식구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다른 것을 택했을 것이라고. 아마 내가 20대였다면 속물?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이 나이에 그런 이야기를 들인 솔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본능이니까.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의 본능. 작가는 <즐거운 나의 집>을 통해 가족이 더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말에도 공감이 되었다. 어찌되었거나 글은 말보다 더 많은 걸 이야기 하니까. 이쪽 저쪽 말로 옮기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일단, 가식이 없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 듯 싶다. (나도 자식에게 무서운 엄마보다 솔직한 엄마가 되어야지~)

여운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가 TV를 보면서 혼자 뒤풀이를 했다. 매화수 한병과 오뎅으로. 마침 TV에는 배우 황정민이 나오고 있었다. 황정민도 어린시절부터 무대가 좋았고 배우가 되기를 희망했고 또 배우가 되었다. 어찌보면 참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잘 알고, 또 잘 하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공지영과 배우 황정민도 닮은 것 같다.

어젯밤..꿈에는....나도 작가가 되는 꿈을 꿨다. 정말 오랜만에..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두서없는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