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딱지치기, 양은 도시락, 반공 포스터, 다방구...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내 어린 시절을 대표하는 단어들이다. 익히, 음반으로는 동 시대의 기억을 간간히 떠올렸지만, 책으로 만나 어찌나 반갑던지..작가 남태제가 자신의 추억을 사진과 함께 엮은 엣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온 옛 친구의 편지를 읽는것처럼 가슴 설렘에 행복했다.

" 엊그제까지만 해도 골목을 휘저으며 어울리던 동네 형들은 아침이면 모두 학교로 가버린다. 두 살 터울인 친형도, 한 살 많은 옆집 수철이 형도 예쁜 크로바 가방을 등에 메고 학교로 간다. 몇 번 그들을 따라 학교 교문 앞까지 가보지만 거대한 철문 앞에서 번번이 돌아서야만 한다. 외로운 일곱 살 아이들은 쪽창으로 가는 볕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형들이 두고 간 교과서를 뒤적거리면서 점심때가 되기를 기다리곤 했다." -p.27-

나는 맏이라, 외로웠던 일곱살의 기억보다는 외로운 일곱살짜리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등교하곤 했던 기억이 먼저 난다. 엄마가 막내만 들춰 업고 일을 나가시면, 두 동생만 빈 집에 둘 수 없어 그냥 학교에 데리고 다녔다. 학교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라고 하고선, 수업시간 연신 창밖으로 동생들이 잘 있는지 감시(?)를 했다. 착한 동생들은 이 언니의 당부를 잊지 않고 한번도 학교 밖으로 나간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나이지만, 우리 엄마도 진짜 강심장이시다. 아침 저녁으로 불러댔던 애국가 가사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아니라, 우리 형제 만세다. 추억이니까 아름다운거겠지..^^

동생들과의 초등학교 (그땐 국민학교라고 했었다) 시절이 끝나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버스를 탔다. 그때 ’회수권’이란 이름의 승차권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해 본 사람은 다 해봤을 추억 하나 또 나온다.
일명, 회수권 11분할..
열장이 한 셋트로 되어 있는 회수권을 교묘하게 11등분해서
한 번을 덤으로 타는 만행도 서슴치 않던 그때, 정말 한 번의 버스비도 아쉬웠다.
버스안내양 언니에게 발각될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그래도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어린 마음 에 저지른 소행이었다고는 하지만, 잘못은 잘못.
버스운수회사 여러분~~ 그때 일 정말 죄송합니다.

쫀쫀이, 아폴로 그리고 번데기..이거 안 먹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시라~~
아폴로의 달콤시큼한 정체불명의 내용물을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빈 비닐을, 앞니가 닳도록 긁어댔다. 고무줄보다 더 질기다는 쫀쫀이를 길게 찢어 이에 물고 잡아당기면 정말이지 이가 빠질것 같았다. 어쩜 그렇게 질기던지.. 그래서인지 맛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학교앞에서는 뽀얀 흙먼지 적당히 버무려진 번.데.기를 주저 없이 사먹었다. 아니, 없어서 못 먹었지. 질근 씹으면 단물,짠물이 차례로 목구멍을 타고 들어갔고, 그 시대 부족했던 단백질의 충분한 보충으로 우리의 몸이 튼실하게 자랐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도 가끔...아주 가끔 번데기를 파는곳을 만나지만 못 사먹고 돌아선다. 옛 기억 때문에라도 한 번 먹을법 하건만 도저히 안 된다. 생물시간에 배운 번데기의 실체를 알고부터이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탓이기도 하다.

저녁이면, 온 가족이 버글버글 티비앞에 모여 앉아 하루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드라마나

만화를 보았다. 하지만 엄마가 늦으시면 우리는 티비 상자만 바라봐야했다. 티비 상자의 문에 특별히 자물쇠가 있었던것도 아닌데, 엄마가 문을 열어야만 테레비가 나오는줄 알았다. 순진하긴...

전기절약을 이유로, 혹은 반공훈련의 일환으로 밤에 불빛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해야할 경우를 뺀... 매일의 밤은, 그렇게 옥수수알을 뜯으며 티비와 함께 저물었다.
가진거 별로 없어도, 아주 많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
그땐 그랬어...


*인용한 글귀와 사진은 본 책에서 발췌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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