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디자인의 도시로 이태리가 있지만 요즘은 뉴욕도 ’뉴요커’란 타이틀로 패셔니스트들의 관심을 끌고있다. 홍콩은 쇼핑의 천국이라 불리고, 온천하면 으레 일본을 떠올린다. 온전히 휴양만을 위한 파라다이스로는 괌,싸이판,푸켓이 있겠다. 파리는 어떨까? 음악과 예술의 도시로 기억된다. 수많은 화가들이 파리의 뒷골목에서 그들의 열정을 쏟아냈고 음악가들은 파리의 거리를 누볐다. 

이 책은 파리의 거리와 건물에 담긴 음악가들의 발자취를 사진작가 박용수의 카메라에 담고 있다. 기존 사진작가들이 내놓은 여행서와는 다른 메카니즘을 택하고 있다. 가령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의 하나인 파리 오페라 극장이 추억과 아름다운 건축양식으로서 여행서에 기록되었다면, 저자는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음악의 거리와 오페라 건물에 새겨진 11명의 음악가를 시작으로 그들의 음악사를 보여준다. 

"오페라 건물에 새겨진 음악가 11명중 프랑스 출신은 단 2명 뿐이다.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독일과 프랑스 국민 사이에 적대감이 고조되었지만" 1875년에 완공된 이 건축양식에 새겨진 독일 음악가는 모차르트를 비롯해 5명에 이른다. 이 사실을 처음 알게된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국경을 초월하고 적대감도 벗어 던질수 있는 순수함이 지금의 음악도시를 만들고 세계인들이 모여들게 되는 이유라는 점에서 프랑스의 수용성에 놀랍고 부럽다. 오페라 극장을 시작으로 프랑스에서 꽃 핀 오페라의 유례와 음악가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가 음악적 전성기를 맞을 때 프랑스, 파리를 사랑했던 다른 나라의 음악가들의 행보도 확인할 수 있다. 
 

전에 읽었던 서양 음악사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 모차르트 못지 않은 전설적인 음악 신동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며 파리에 정착한   벨리니( Vincenzo Bellini, 1801-1835)를 들 수 있다. 그의 음악사적 업적과 쇼팽과의 각별한 친분으로 무덤을 나란히 하고 있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은 쇼팽의 무덤만을 다녀간다는 저자의 설명을 통해, 정보의 홍수속에서 건진 지식들이 얼마나 편협하고 단편적인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특히 여행을 다니다보면 유명한 곳만 찾아다니게 되고 그 곳은,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모인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가끔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조차도 누군가의 발자취를 쫓기는 마찬가지다. 낯선 도시를 경험할때 그 곳에 대해 완전히 알고 가든 아니면 아주 무지하게 떠나는게 좋다는 내 여행 마인드에 다시금 힘을 얻는다.


파리가 예전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건 사실이다. 파리에서도 요즘은 정통 샹송을 듣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샹송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거리공연을 벌여도 말이다. "파리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가장 더러운 오물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라고 인정한 쇼팽의 말처럼 파리는 음악적 낭만으로 가득찬 도시는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파리와 함께한 서양음악사의 그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