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사실인줄 알았다. 아버님 병환으로 병원에서 생활하며, 참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것을 보았다. 처음 몇 주는 환자 옆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간병을 한다. 그리고 몇 주 동안엔 드문드문 발걸음을 하고, 몇 달씩 누워있는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에게 은근한 짜증을 부린다.  가족대신 천천히 전문 간병인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이런 수순을 밟더라..돈을 벌어야 병원비도 낸다고들 하더라. 이게 세상사는 현실이었다. 내가 <고향 사진관> 이란 책을 못 보았다면, 세상이 서운할 뻔 했다. 

천재는 아니어도 우수한 머리를 가진 사람, 성격 좋고 운동 잘하고, 준 재벌은 아니어도 먹고 살기 어렵지 않은 집안에서 이제 막 청춘의 꿈을 펼치려던 한 사람, 용준은 스물다섯 나이에 갑작스런 가장家長이 되었다. 소년,소녀 가장들도 있는데 젊은 청년의 가장됨이 무슨 큰 일이냐 하겠지만,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둔 가장은 다른 얘기다.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를 짜낼 법도 하건만 이 아름다운 사람은 그걸 모른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사진기와 ’고향사진관’이라는 간판 마저도 바꿀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허락한 시간들이라고 받아들인다. 


17년...도저히 지켜낼 수 없을것만 같은 시간이다. 용준이 ’고향 사진관’과 아버지를 지킬 수 있도록 해 준  한 사람, 희순. 용준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용준을 믿어주고 지기가 되어 준 고마운 사람, 아내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남편의 눈빛을 읽고 마음을 다독이고 여하틍의 결정에도 묵묵히 요준을 지켜 준 희순이 있었기에 용준은 아버지와의 시간들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용준보다 더 인상깊은 여운을 남긴 사람이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더니, 이들은 처음부터 닮은채로 만났던 듯싶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 용준과 고마운 사람, 희순에게도 아버지와의 이별은 결국 온다. 갈 사람은 언젠가 가고, 만나야 할 사람들은 언제고 꼭 만나게 된다는 말... 후자를 들어 늘 희망스럽게 품었지만 전자의 부각은 오늘을 아프게 누른다. 
      
      

용준이 아버지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걸 뭐라고 해야할까? 사랑일까, 아니면 체념적 희생일까. 세상의 이기심에 적당한 타협을 맛 본 나로서는 읽기만으로도 부담스러운 내용이다. 용준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했더라면 술로 시간을 보내며, 실의하지 않았을거란 생각이다. 의무감으로 점철되어지기에는, 인생에 대해 무책임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다른 가족에 대한,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시켜야 했던 용준이 한 편으로는 밉다. 이런 게 가족이란 건가보다. 미운대로 서운한대로, 혹은 좋으면 좋은대로 얽혀 사는 것에 익숙해 지는 것,  나 보다 먼저인 사람들이 나를 대신해 부대끼며 사는 것, 이런 것이 가족이란 이름이다. 알이 깨고 나올 때까지 품어주고 날개짓을 가르치고 먹이를 물어다 먹이고, 그것을 다시 자기 새끼에게 물려주는 어미새처럼 말이다. 


 아버지를 편안히 보내드리고 이제는 행복해야 하는데... 세상 참 지랄맞다. 이 책 참..얄궂다.  이 이야기가 꾸며낸 것이라면 이쯤에서 고마운 엔딩을 주었겠지만, 실화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걸 여 보라는듯 하다. 적당한 이기심에 빗대어 변명해봐도 어쩔 수 없는 후회가 인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식의 그늘이 되고 지켜 주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연한 줄 알았다. 아버지도 돌봐줄, 지켜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조금만 더 일찍 그것을 알았더라면...단 한번 만이라도 그 시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부등켜 안고 고마웠노라고, 죄송했노라고 전하고 싶은데... 지나간 것들에 대한 후회의 시선이 발등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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