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원대한 계획과 포부가, 정치인 공약처럼 남발하는 신년 새날이 어느덧 5개월을 훌쩍 넘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갔음에도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 본 자리에는 미련과 아쉬움이 깊다. 내 다짐의 시간들은 구멍 난 주머니를 빠져 나가듯 그렇게 흘러갔다. 바삐 보낸 것만으로 내 시간들에게 의미 있다 말하기 부끄럽다. 왜 지난 시간들에 대한 미안함이 드는 걸까? 그건 아마도 영락없이 비어 있는 약속의 바구니 때문이리라. 하루의 30분을 흘려 보낸건 별것 아니었는데, 지난 5개월을 뭉뚱거려 놓으니 참 면목이 없다.

꿈 바구니에 담긴 스페인으로의 여행
나의 꿈 바구니엔 언제나 ’여행’이 담겨있다. 그날을 위해 매일 약간의 어학공부가 목표이다. 특히 스페인에 대한 동경은 두 해전부터 시작된것 같다. 딱딱한 여행 가이드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담은 스페인의 이모저모를 알게 해 준 손미나씨나 이상은씨의 책을 통해서 더욱 그곳이 좋아졌다. 바다를 향한 고성들, 풍요로운 해산물과 정열의 덩어리 토마토가 곁들어진 요리위로 코발트빛 하늘이 펼쳐진 그림같은 그곳을 마음에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꿈 바구니에서 시들해진 스페인 여행에 대한 ’꿈’이 이 책으로 인해 아삭한 생기를 불러일으켰다. 여행 작가나 사진작가를 통해서가 아닌, 셰프의 눈으로 바라 본 스페인이란 점에서 멋과 더불어 맛이 있는 책이다. 행복한 맛집들의 소개에서 유독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곳이 있다. 완소남들의 점심식사가 있는 ’골리아르드’가 그곳이다. 점심메뉴가 매일 바뀌며 선택의 폭이 다양하고 가격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소개한다. 여기에 정장 차림의 멋진 스페인의 완소남들이 모인다는데 더 말해 무엇할까..

맛있어서 충분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스페인 여행도 미각을 충족시키며 하는지라 따분할 여력이 없을듯 하다. 명소와 함께 소개되는 스페인 요리들과 그 레시피가 가득하다. 나라마다의 음식은 맛을 넘어 문화적 컨텐츠가 된지 오래다. 스페인의 맛은 강하다. 정열이 녹아있다. 내가 탐하는 맛에도 가깝다는 이유가 지도상의 거리를 좁히기에 충분하다.

각종 프로에서 맛집을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는 것에도 이런 이유가 작용하기 때문이리라. 우리네 삼겹살 같은 ’하몬’은 쉽사리 뿌리치지 못할 유혹이다. 거기에 곁들이는 시원한 맥주나 와인의 목 넘김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시원하다. 달콤함이란 또 어떠한가. 피곤을 살짝 가셔주기도 하고 미소를 절로 자아내는 초콜릿의 행복감이란 언제나 기꺼운 대상이다. 하지만, 숙취를 위해 초콜렛 걸죽하게 녹여 마시는 스페인식 아침 해장에는 약간 속이 거북하다. 스페인에서의 해장을 위해서라면, ’근대스프’를 추천하고 싶다. 그녀의 레시피를 따라 만들면 별로 어렵지 않게 아침 해장을 우리식으로 즐길 수 있을듯 하다. 하지만, 맛을 탐닉하는 다양한 방법의 차이를 알아가는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음식점에서 맛을 보면 집에서 대충 비슷하게 해내는 타고난 요리꾼들을 대할때 마다 부러움이 가득한 나로서는 자세하고 친절한 레시피에도 불구하고 주눅이 든다. 그래도 어려움없이 도전해 볼만한 ’상그리아’ 한 잔을 따라 만들어 내며 스페인의 달콤새콤한 맛을 연습한다. 눈을 감고 맛보는 그 맛에 지중해 푸른빛이 다가온다. 마음으로 떠나는 스페인의 여행지에서, 맛있는 레시피를 하나씩 꺼내보는...그렇게 서툰 맛을 만들어 보는 즐거움을 한동안 갖게 해 줄 맛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