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또 다른 끝에서

 

연일 불투명하고 절망적인 경제위기론이 대두된다. 연초 길지 않을거라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 보이던 전문가들조차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위축된 경기가 장기화될거라는 생각들이 일반화되고 누구도 그 끝을 예측하지 않고 있다. 아니 못 하고 있다. 내려가는 연습을 지금 하고 있는것이다. 자의로 때론 떠밀려서 밀려 내려가고 있다. 물가와 각종 공과금만이 꿋꿋하고 줄기차게 오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IMF때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말이 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말이다. ’유비무환’이란 말이 뻘춤해졌었다. 일이 생기기전에는 반드시 예기되는 그 무엇들이 있다.  허물어질 건물에선 쥐가 먼저 달아나고, 비가 올라치면 어르신들 몸이 벌써 안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려 거대 경제가 뒤뚱거리기 전에 아무 징조도 없었겠는가. ’하인리히 법칙’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큰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수많은 조짐과 징후를 보이다가 그것이 누적되어 한꺼번에 크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 징후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것은 성공에 들뜬 축제의 마당을 접지 못한 미련때문일것이다. 징후를 알아차리고도 애써 눈 감고 준비하지 않은 때문이리라.

등산을 자주 다닌다. 봄으로 가을로 사람들의 발길이 몰린다. 그런데 등산을 하다보면 한 사람 겨우 올라갈만한 길에서 앞사람을 밀치며 정신없이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들을 왕왕 본다. 주위에 나무와 풀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에 관심이 없다. 땅에 얼굴을 박고 그냥 올라간다. 막상 정상에 도착해보면 그 사람들..아직 거기 있다. 일등에게 상을 주는것도 아니고 먼저 발을 디딘 정상이 자기 땅이 되는것도 아닌데 오로지 먼저 오르는것에만 목표를 삼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인생에서, 삶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오죽이나 열심히 오르겠는가. 이 책에서도 비슷한 예를 들어 말하고 있다. 요지는 내려갈때의 힘을 비축하지 않고, 혹은 내려가는 것은 자신의 사전에 절대불가라는 자기 자만과 욕심이, 막상 내려갈때의 버거움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산행길에서 오르막에 넘어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내려오는 도중 다리가 풀리거나 방심해서 구르는 경우는 있어도...내려가야 할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것만으로도 우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것이다. 그것이 곧, 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공격적 방어가 될것임에 틀림없다.


요새 책 제목에 부쩍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는데, 바로 ’따라잡기’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따라잡기는 실로 전투적이다. 하지만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면서 그 사람을 추월할 수는 없는일이다. 인터넷 대박의 주인공, 음식 대박집, 아이디어 창업등의 현란한 유혹에 빠져 준비와 철저한 계획없이 그들만의 성공을 따라간다면 순식간에 쪽박을 차게 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볼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인드와 직관, 결단력을 배우는 것으로 족해야 한다. 그것을 따라잡으면 성공은 그를 뛰어 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려가기 전에 점검해야할 것들을 제시한다. 건강,가족,인연,자산,능력(직職이 아닌 업業의 관점에서 강점과 약점을 점검) 이다. 딱히 내려가기 전이 아니어도 수시로 돌아보고 챙겨야 할 것들이 아닌가싶다.  내리막길에서는 미처 돌아볼 경황없이 잃어지는 것들이기도 하다. 소중한 것은 떠난 후에야 깨달아진다고 한다지만, 떠나기 전에 소중함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내려가는 연습의 시작이 아닐까? 힘들고 절망가운데서 낙담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시간을 도둑질 당하지 말고, 생각을 정리하고 주위를 점검해 보는것이야말로 중요하겠다.

다시 또 껄끄러운 과거를 돌아보자면, IMF때 직장 동료들이 가장 많이 뱉어낸 말이 ’안되면 직장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지.’였다. 시대에 따라 직장 때려치우고 할 일이 변했다. 요새는 ’안되면 이민이나 가지’이다. 이민가서 뭐 해먹고 살거냐고 물으면, 대답하기를 ’뭐든 못하겠어. 세탁소를 하든, 마트 점원을 하든 죽기 살기로 하면 되겠지’다. 언뜻 이해가 잘 안되는 말이다. 그럼 왜 이 나라에선 죽기살기로 못하는데?  그렇다. 체면 때문에 못하는거다. 체면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남의 땅에서는 밑바닥부터 다시 할 수 있어도 여기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이 책에서는 서 너 페이지 분량 할애로 체면을 버리라고 하지만, 나는 가장 먼저 그리고 꼭 버려야 할것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체면은 결코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산 정상에서 안 내려오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꼭대기에서 밤을 나기밖에 더하겠는가. 내려가야 할 때가 된것을 알면서도 고집을 부려봤자 자신만 고달프다. 기를 쓰고 버티다 한 발 잘못 디디면 떨어지는 수가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배워야만 감 떨어지는걸 알고, 된장인지 똥인지 맛을 봐야만 알겠는가! 내려갈 준비도 하자. 산 꼭대기서 떨어지면 죽는수가 있다. 내려간다고 죽지는 않는다. 이유없이 코 빠뜨리고 맥이 없었던 걸로 미루어 산꼭대기에서 너무 오래 버티고 있었나보다. 내려가기 위해 한 발을 떼고 나니 홀가분하다. 광고에서 보니 갖가지 주문들이 쏠쏠하게 흘러나온다. 좌로 보면 내려가는 연습과 깊은 연관 있어 보이고, 모로 보면 아닌것도 같은 글귀가 눈에 띈다. 나의 주문으로 삼으련다.


                                                  
활기찬 출발, 최고다   
행복하다. 끝내준다 
오늘도 보람차게 살았다. 나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