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가 쏟아 낸 숱한 화제작들은 추리 소설중에서도 사회비판적인 것들이 주를 이루었기에 깨나 진지하고 무게감도 적잖았다. [용의자 X의 헌신], [13계단]은 그의, 혹은 여타 작가의  추리 소설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하다. 반면 그의 '탐정' 시리즈는 초기 본격 추리물에 바탕을 둔 비교적 단순한, 수수께끼 풀이식이다. 흥미는 여전하지만, 그의 강렬했던 몇 작품과 비교하면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이 작품은 자신의 소설속으로 들어가 추억의 수수께이 풀이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덴카이치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창조된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절개되어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흥미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랜 사회비판 추리소설에서 오는 피곤한 창작을 잠시 쉬어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수수께끼 그 자체를 즐기는 소설" 을 선택한 건 아닐까. '금단의 책'에 매료된 마을 사람들. 그들은 차례로 죽어가고 당연히 덴카이치 탐정은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그러나 덴카이치, 즉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히 사건 해결에 치중한, 그저의 추리 소설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의 작품들과 다른 작가들이 쏟아내는 치밀하고도 고도로 숙련된 추리물들이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에 비해, 순수하다고도 부를만한 추리물, 특히 수수께끼 풀이식의 탐정 소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자신의 이번 작품이 범람하는 많은 추리물들 중에서 '금단의 책'으로, 잊었거나 잃었던 매력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싶었는지도.

 

작품속에 등장하는 소설의 선구자 '히다 슌스케'의 죽음은 자기안에 갇혀서 더이상 창작의 열의를 불태우지 못하고 퇴색하고 진부한 되새김의 작품들을 쏟아내는 기성의 우울한 세태를 꼬집으며 히가시노 게이고 자신에게 던지는 자문을 담고 있다. 새로의 작품 세계를 구상하고 창조하려는 히다 슌스케의 3명의 문하생들처럼 "우리들과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이고 싶었겠지. "리얼리티, 현대적 감각, 사회성. 이 세 가지를 큰 축으로 삼고 싶어요.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추리 소설계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트릭이라든지 범인 알아맞히기 따위로는 어렵습니다." (325쪽). 그렇다. 그러나 끝내 그 세계를 소설로 쓴 이유는 단순히 습지에서 보았던 물망초의 꽃말 때문일까. 추억일까. 맛을 느끼는 혀는 참으로 간사해서 근사하고 이색적인 맛이 들어오면 금방 침이 고이다가도 가미되지 않은 단순한 맛에 밍밍하고 지루해한다. 머릿속에 '감춰진 혀'도 현란하고 감칠맛 나는 작품들에 길들어진 이후로는 깔끔하고 간결하며 원초적인 작품에 약간은 시큰둥하기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작품을 통해 추리 소설 본래의 맛을 잘근잘근 곱씹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