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때문이다. 누군가 나서줘야만 할 것같은 분위기. 혼자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하지도 않으려는 게으르고 이쁜 공주님 때문에 사방은 분주하다. 누구든 그녀를 구하기 위한 '기사'를 자청하기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난장이'를 감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공주님의 도우미로서 곧잘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그녀는 왕비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죽음을 부르는 그 이름, 백설공주는. 

 

토비가 백설공주를 쏙 빼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생기고 눈에 띄는 외모 때문만은 아니고, 수동적이고 겁쟁이라서 그렇다.  하긴 그가 뛰고 날고 해봐야 전열을 가다듬은 '집단 이기'는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외딴 작은 마을이라면  한적하고 풍경적이라는 느낌이 먼저여야하는데, 백설공주가 머물러서인지 어느 새, 폐쇄적이고 응집적이며 고집스런 분위기다. 단지의 '백설공주'때문에 토비아스가 곤경에 처하게 되는 건 아니다. 그는 탐욕스런 집단 이기의 희생양이었다. 글쎄..토비가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밑도끝도 없는 정황과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10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이유는 탐탁치가 않다. 그러나 그 탐탁치 않은 이유는 그의 침묵에서 비롯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탐욕의 한 가운데,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과 그것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침묵했다는 것이 토비의 진짜 죄목(罪目)이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소재로 글을 쓴다고 했다.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가, 탐욕스런 집단이기를 가르키는지 누구든 쉽게 모함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건지라면, 그말은 맞다. 소설화 되지 않은 무수한 탐욕과 억울함은 주변에 공기처럼 퍼져있다. 그래서 가끔은 호흡이 거칠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백설공주같지 않은 백설공주의 등장은, 따분할 것 같은 외딴 마을에, 따분할 것 같은 이야기를 확 바꿔놓는다. 아멜리. 요런 맹랑한 아가씨가 현대적 감각의 백설공주로 분(憤)한 것이 반갑고 유쾌하다. 도전적이고 저항적이며 씩씩하고 여전히 예쁘기까지 하다. 가장 반가운 이유는 역시나 능동적이고 자기 주도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에서 그녀의 역할은 여기까지지만 말이다. "냉철한 카리스마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남다른 직관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감성 형사" 피아가 등장할 싯점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지렛대가 둘이나 된다는 것은 추리소설을 더욱 역동적이게 한다. 아니나다를까 이들 명콤비의 활약은 다각적인 재미와 추리를 가능케한다. 중간중간 이 두사람의 가정사와 애정사등이 잡다하고 따분하게 펼쳐지지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인간적이고 평범한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독자와의 면밀한 친근감을 더하게 한다. 아주 구색이 잘 갖춰진 추리소설이다.  재미가 덜하지도 않고 생각이 못 미치지도 않는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은 잘 모른다. 그런데 탈수 소리가 시작되면 마음이 덩달아 덜덜덜, 쫓긴다. '빨리 와서 내 속에 것들을 빼내란 말야. 어서.' 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이 책을 들고부터 탈수 소리가 왕왕거렸다. 늑장을 부리면 세탁기가 폭발해 버릴 것 같은 긴박감으로 읽었다. 잽싸게 읽었다. 덕분에 별 탈이 없었다. 읽다가 중간에 딴 짓 못하게 하는 추리소설이다.    

 

 

공식적으로는, 타우누스 시리즈 4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으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우리에게 첫 선을 보였다는 건, 그만큼 그녀의 작품중에서 내노라 할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연거푸 소개되는 그녀의 <너무 친한 친구들>에 대한 궁금증은 덜하지 않다. 나에게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