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모여 살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들 듯 소란이 수시롭고 그런가하면 그런 날들이 그저 그런 보통날처럼 익숙해진다. 소란이라고해서 꼭 큰 일이 아닐수도 있다. 이제 막 아기가 태어난 집에선 수시로 우와! , 하는 탄성을 곧잘 지르는데, 이유는 뻔하다. 아기가 웃었다든지, 몸을 뒤집었다든지, 아랫니가 나왔다든지, 하물며 방귀만 뀌어도 부모가 소란을 떠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어느 집은 3일이 멀다하고 부부싸움을 하면서도, 팔짱을 끼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언제 그랬냐고 시시덕거린다. 한 번도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노부부도 거의 매일 만난다. 옆집 사람들에겐 언제나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들은, 정작 서로 눈도 안 마주친다. 모두 다른 듯도 하고 특별나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보통날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의 집 안이 궁금해 본 적은 별로 없는 이유다. "타인의 집 안을 들여다보면 재미납니다." , 라고 말하는 에쿠니 가오리, 그래서 작가인가보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재밌다는 건지, 했는데, 가만보니 나 또한 ’타인의 집 안’ 을 즐겨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들이 써낸 ’타인의 집 안’ 이 결국 드라마이고 영화이고 책이지 않던가.   



인간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찾아 세상을 방황하다가
가정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  -조지 무어- 


고토코네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보통날의 보통 가족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족 구성원 모두 소란을 ’보통화’ 시키는 데 탁월한 특별한 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를 배웅하고 나서 화장을 하고, 저녁때가 되면 화장을 지우는"  엄마보다  딸 셋에게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엄마가 참으로 독특하다. " 대수로운 일 아니야. 생각만큼 나쁜 건 아니니까 ", 라고 담담하게 말 할 수 있다니. 엄마는 아직 소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햄스터 윌리엄을 선물 받고 그렇게 볼을 붉히며 신나하는 아줌마는 별로 없으니까. 그런데 이 나이든 소녀는 계속해서 슬픈 느낌을 뿜어낸다. 재미난 듯 웃는 웃음에서도, 진지함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에서도 여전히 불안하고 슬퍼보인다. 여자는 흔히 아빠같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빠처럼 푸근하거나 진짜 자신의 아빠같은 성격의 남자를 이상형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지 ’아빠’ 랑 살고 싶은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고토코의 엄마는 그냥 ’아빠’ 랑 사는 딸같다. 사랑하며 존중받고 이해받는 아내로서가 아니라 그녀의 딸들 중 하나처럼 살고있다. 단지 남편의 과묵함 때문은 아니리라. 스스로 자존감을 잃고 사는 여자처럼 느껴진다. 남편이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일상은 화장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 화장을 지우는 것으로, 남편을 배웅하고 맞이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내내 그런 그녀가, 그녀의 사춘기 딸보다 애처롭게 보였다. ’집안에서 쌓아올린 부동의 실적’ 인 굵은 손 마디가 사뭇 안쓰럽기도하다. 이름을 잃어버린 여자의 모습이기도 했으므로. 여자가 결혼을 해서, 특히 아이를 낳으면 이름이 없어진다. 아무개엄마, 다. 가족내에선 누군가의 ’여보’ 이고, 누군가의 ’ 며느리’ , 또 누군가의 엄마일 뿐이다. 가끔이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며, 자기 자신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게 한 것도 그녀다. 

    
그래서 말인데, 부부가 원만히 대화하지 못하거나 서로의 존중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 아이들은 침묵의 강요속에 자란다는 것을 알게된다. 가부장적이며 - 아이들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막무가내로 반대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 메마른 아빠로 인해, 자존감을 잃은 엄마로 인해 가장 두드러진 걱정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은 둘째 딸, 시마코이다. 그녀는 정열적이며 다소 과장된 성격으로 가족들을 당혹하게한다. 버림받은 유부남에게 연민을 느끼며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두 번의 자살, 그리고 가족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선물로 사서 떠안기는 것도 모자라, 친구가 낙태한 아이는 자신의 아기라며, ’쥐어 짜내듯’ 울기까지 한다. 덜 자란 나무가 버팀목을 잃고 이리저리 휘어지고 뒤틀린 듯하다. 부모의 간섭도 없지만 동조도 없다. 관심을 두면서도 무심하다. 한편으로는 시마코의 부모 처사가 수긍되면서도, 그래서 더욱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관심을 간섭이 아닌 형태로 돌려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해야하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마코는 뿌리가 상한 나무가 아니다.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의 여자다. 부모로부터 양질의 영양분을 애타게 더듬는 아직..어린 나무, 가 아슬아슬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고, 책장을 덮을 때쯤 알았다. 일일의 다른 가족의 사는 모습이 제각각이며 나름대로의 가족애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과, 시마코의 부모가 그녀에게 보여준 일부도 나름의 기다림이며 이해고 사랑법이라는 것을. 에쿠니 가오리는 무심한 듯 그것을 숨겨놓았고, 시마코의 가족은 그것을 보기좋게 드러냈다.   



아이를 낳아 잘. 키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이것은 약간 다른 것 일수도 있지만 아니기도하다. 재혼가정에서 상대 배우자의 자녀를 대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이라고 한다면, 사랑의 표현이다. 좋은 선물 사주고 항상 웃어주고, 하는 것 말고 아이가 잘못했을 때 엄하게 꾸짖어야하는 그 ’사랑’ 에 관한 것이다. 내가 낳은 아이에게는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 경우, 그것이 쉽게 되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 표현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입장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 부분을 계모의 ’구박’ 으로 받아들일까봐, 혹은 주위의 시선이 그럴까봐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낳아 기른 자식도 때론 ’ 나, 주워 온 아이지? ’ 라며 서운해하는 데 말이다. 다르다고 말한 것은 각각의 상황이며, 같다고 한 것은 부모의 고충이다. 부모학교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빠학교, 엄마학교. 거기선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꼭 그런 특정한 수업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부모는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돌보는 법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읽는 법, 읽은 아이의 마음에 지혜로운 대답과 행동으로 대처하는 법 같은 거 말이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동화책을 함께 읽곤 하는데 아이가 다 자라니 뜸해진다. 그래도 간간히, 동화책을 의도적으로라도 읽는다. 아이를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주기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받은 느낌이나 감동을 전하고 싶을 때 아이 손에 책을 건네는 것으로 소통한다. 때론 열 마디 말보다 힘있다.  내가 체득한, 작은 지혜다. 




밤의 전철은 참 아름답다. 환하고 따뜻해 보인다. 
플랫폼을 올려다보다가, 나는 황홀감에 젖는다. 분수에서 울리는 낮은 물소리, 역내 방송과 발차를 알리는 부드러운 벨 소리, 바람 소리,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나는 안심하고서,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처럼 노곤해진다. /53쪽
..........................................................................................................  밤의 전철은 집을 닮았다


가족 이야기다. 조금은 남다르기도 한 것 같지만 그들이 가족이어서 이상할 것 없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통날을 살고 있는데, 그 방식은 사랑과 배려와 이해다. 부분적으로는 고집 세고 타협하지 않는 이해도 있지만, 여전히 가족이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서로를 걱정해주고 세상으로부터 감싸주고, 보둠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 이야기. 그들의 소란한 보통날에 잔잔한 미소를 흘릴 수 있다는 게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그다지 보통적이지 않은 나의 소란했던 날들까지도 지긋하게 되돌아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앞으로의 날들도 그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분홍색 속표지에 퍼즐 조각이 덩그라니 하나 있다. 혼자 떨어져 있는 저 퍼즐조각을 제자리에 끼워주면 완성이 될 수도, 그 하나의 퍼즐을 시작으로 다른 조각을 가져다 하나씩 붙어가며 완성할 수도 있는 것, 둘 다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란한보통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