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들은 수업의 중간고사 시험 문제로 합스부르크 일가의 가계도를 그리는 게 출제됐던 적이 있다. 너무나 독특했던(!) 문제라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역사라는 주제 근처에서 얼쩡거릴 일이 많아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가 역시도 역사다. 얄팍한 독서이력이나마 가장 열심히 읽고 있는 책들도 대부분 "史"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참 어렵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많이 읽는 사람들에 비한다면 나의 역사책 읽기야 새발의 피에 불과하겠지만, 읽을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는 분야가 역사이기도 하다. 언제쯤이면, 얼마만큼 읽고 듣고 배우면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안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를 읽었다. 들어본 이름이다. 그런데 막상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전체분량 500여쪽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이 부담스러웠고, 그 분량 때문에 끝까지 읽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했던 책이기도 하다. 글쓴이 "앨리슨 위어"는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 소설가. 노스웨스턴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다."(책앞날개)고 한다. 이어지는 책 앞날개의 글쓴이의 소개를 보자면 주로 영국사에 관한 대중적인 역사서를 많이 써온, 영국에서는 꽤나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인기작가인 모양이다.

 

  서양사 쪽의 책을 보다가 경험하게 되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너무나 비슷한 이름들과 그 인물들 간의 관계, 그리고 지금의 국경선 개념으로는 상상도 이해도 잘 되지 않는 많은 "왕국", "공국"들의 존재와 그 관계 같은 것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키텐의 엘레노오르는, 프랑스의 왕 루이7세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노르망디 공작 헨리2세와 결혼해서 나중에 잉글랜드의 왕이 되는 사자심왕 리처드와 실(무?)지왕 존을 낳는 바로 그 여인이다. 결혼과 이혼, 재혼 뿐만 아니라 이후 아들들이 아버지를 향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남편의 편이 아니라 아들들의 편에 섰다가 10여년을 유폐된 채 생활하기도 했고, 아들들이 왕이 된 후에는 실질적인 여왕으로서 통치를 하기도 했던 여인. 그야말로 "파란만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그런 삶을 살다간 여인이었다. 책에서는 그녀의 삶을 "독수리가 세번째 둥지에서 기쁨을 찾으리라"는 서양 중세의 예언과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서양사나 동양사나 아무래도 역사는 his'story라서 그럴까 중요한 인물에 대해서도 여자에 대한 것이라면 남겨진 사료는 매우 적은 것 같다. 남편 혹은 아들들의 이야기 뒤에서나 얼핏얼핏 그녀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뿐.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역시도 상당부분 작가의 추론에 의한 정황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양 중세 역사의 굵직굵직한 인물들을, 그 시대의 시대상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잘못된 글자가 너무 많아서, 쉽지 않게 읽히는 글을 더욱 쉽지 않게 만든 점은 다소 불만스러웠던 책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합스부르크 일가의 가계도만큼이나 중요한 가계도를 만들었던 여인 [아키텐의 엘레노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