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봐야지, 꼭 한번 읽어봐야 하는데 싶으면서도 선뜻 손에는 잘 잡히지 않는 작품들, 이름하여 고전. 입시위주의 교육을 거치다보니, 작품을 실제로 읽어보진 못했으면서도, 줄거리만 요약발췌해놓은 작품해설집 따위는 자주 접해봤던 것 같다. 글쓴이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줄거리, 글이 씌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며, 시험에 출제되는 포인트 따위를 정리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이해 요령까지 친절하게 설명해둔 그런 책들. 문학작품마저도 감상이나 공감 없이 그저 남이 정리해놓은대로 암기해왔다. 그래서 나는 더러 헷갈린다. 그 작품을 실제로 내가 읽었던 것인지, 혹은 정리된 줄거리 요약집을 본 게 전부임에도 실제로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 작가이름을 대면 대표적인 작품 하나쯤은 무슨 공식외우듯이 툭툭 튀어나오지만, 그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 따위는 떠오르진 않는다. 실제로 읽은 적이 없으므로.

 

  루쉰이라는 이름을 대면 툭 튀어나오는 작품, 아Q정전. 그러나 못 읽어봤다. 아Q정전에 대해서는 작품해설집에서조차 읽어본 적이 없어 줄거리도 모른다. 그런데 워낙 많이 들어본 작품명이라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고전이라면 등장인물 많고 사건의 양상이 복잡하고, 분량이 많을 꺼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랬기에 실제로 작품을 읽는대신, 간편한 요약집을 봐왔던 거라는 핑계를 대게 된다. 그러나 [아Q정전]은 내 예상과는 달리 두꺼운 책은 아니다. 우선 책이 얇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 책 [아Q정전]은 책 표지가 특이하다. 책 겉표지의 저 회색부분, 아Q의 부루퉁한 얼굴이 새겨진 부분은 원래표지에다 두꺼운 널판지를 덧댄 것이다. 표지 그림은 자오옌넨이라는 중국의 대표적 화가가 아Q의 얼굴을 판화로 새긴 것으로, 책 본문에서도 그의 작품을 여러 장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다른 [아Q정전]과의 차이점일 것 같다.

 

  아Q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가 나는 어렸을 적에 동네에 있었던 어떤 아저씨(?)를 오랫만에 기억해냈다. 아저씨였는지 할아버지였는지 혹은 청년이었는지 어렸을 때라 잘 모르겠는데 동네 사람들은 전부다 그 사람의 별명을 불렀다. 늘 망태기를 지고는 소에게 줄 풀을 베러 다닌다고 했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늘 낡고 헤진 옷을 입고 다니면서 말투는 어눌했고 행동거지도 다소 어설퍼보여 어린 내가 보기에는 약간 무섭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고, 어른들이 막 대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던 사람. 이 책에 나오는 아Q는 어딘가 그 아저씨를 닮아있다. 일정한 주거도 없고 가족도 없고, 글을 쓸 줄도 모르고, 가진 것도 없는... 어딘가 모자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없어보이는 인물.  자존심은 최고인데, 그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은 참으로 이상해서 자신이 당한 수모에 극도로 분노해있다가도 다른 수모로 그 수모를 잊어버리고 마는.... 글쓴이 루쉰이 아Q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신해혁명을 전후한 시기의 중국인의 정신상태라고 한다. 세상의 중심에 있던(!) 중국인들이 서양열강 앞에서 치부를 드러내던 시기의 혼란스러움이 드러나는 것 같다.

 

  처음 읽어보는 [아Q정전]인데 내용과 어울리는 판화가 곁들여져 있어 내용이해에 도움이 됐다. 고전은 다시 읽을 때마다 그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새삼 생각해보게도 한다. 이 책 역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