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들이 매일 느끼되 의식하지 못하는 칠정 즉,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감정을 너무도 진솔하게 표현한 감성어린 책을 만났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프린세스의 천일책」이 바로 그렇다.

그림형제의 동화 「마렌공주」이야기를 조연의 입장에서 철저히 뒤집어 생각한다는 점에서 시작이 흥미로웠다. 요새 한창 이슈인 ‘논술’의 기초, 창의적 사고의 입문(入門)을 흥미로써 자발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동화 재조명하기... 마치 학창시절 글짓기 대회를 앞둔 여고생처럼 흥분되고 묘한 도전감이 들었다. 읽기 시작!

책의 초입부는 등장인물이 뱉어 안내하는 지명과 여러 신들의 이름이 복잡다단하게 느껴졌다. 허나 일기형식으로 써내려간 글이 그 느낌을 완화시키며 다음 날의 기록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샤렌공주의 몸종으로 임금님이 정한 혼처를 거부해 진노를 산 공주를 따라 탑에 갇힌 주인공 다쉬티가 기록한 일기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책의 표지만 보았을 때는 억척스런 하녀가 동화의 끝에 결국 공주님 대신 신데렐라가 되는 그저그런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려나 싶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누구나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모든 책은 독자를 감동시키고 마음을 움직이는 교훈 하나를 주제화 하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문두에서 밝힌 것처럼,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삶의 순간순간 느끼고 고민하는 미묘한 감정의 문제들-우정과 사랑, 난관과 갈등, 상사에의 충성과 사심 등-을 글로써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독자들이 얻었으면 하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영화에서 언젠가 보았거나, 흔히들 상상해보았던 흥미진진한 판타지 소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재미 속에 교훈이 보이게끔 한 점이 꽤나 신선했다.

듣는 사람을 꿈으로 이끄는 노래, 치유하는 노래 등 노래로써 평화를 유도하는 몸종 다쉬티. 그녀의 말과 글을 통해 얻은 교훈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새록새록 되새길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다.

충분한 여건이 되면서도 배우기를 게을리 해 글도 모르고, 누리기만 하는 자신의 현 위치를 벗어나면 부적응자가 되어 버리는 샤렌 공주. 그녀는 외모가 아름답고 부와 권력을 모두 가졌지만 학습하거나 앞으로 전진하려는 태도가 결여된 의존적인 인물형이다.  그녀의 아버지인 임금님은 다리 하나가 온전치 않아서인지 사람이 있을 때만 공주를 때려 권위를 내보이고자 하는 허세형 인물이다. 동맹관계를 형성코자 하는 권력욕만 앞세워 자신이 정한 혼처를 공주가 거부하자 딸을 7년간 탑에 가둘 것을 행하는 전형적 이기주의를 대표한다.

다쉬티는 처해진 역경의 순간에도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희망을 보고 웃음과 노래를 통해 앞으로 전진해가는 미래형 인물이다. 다쉬티의 “치유의 노래”는 본인의 의지가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환자로 비유되는 저마다 환부가 있는 현대인들에게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고 기본된 것임을 알리는 것이 필자가 발견한 교훈 중 첫째이다. 국경없는 지식공유세대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지식의 업그레이드는 필수불가결하다. 이를 위해서는 배우려는 의지가 우선되야 하고 처해진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 즉, 발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잘 살아가기 위한 초석으로 “새로운 정보를 배우려는 본인의 의지”가 필요함을 작가는 주목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임금이 공주에게 탑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용서를 빌게끔 엄포 놓는 말을 하자 “그런 말을 하면 불행이 찾아오고 본인만 가슴 아플 거라고 충고할 뻔” 했다고 일기에 기록한다. 이 대목에서 또 한번 뜨끔했다. 타인에게 나쁜 말을 퍼붓거나 비방을 하면 언젠가는 부메랑 효과로 본인이 크게 혼난다는 것을 살면서 느낀 탓일까. 좋은 말, 아름다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선하게 만들라는 것이 두 번째 교훈이다.

가을에 다시 오마 약속했던 칸 테거스가 봄이 되어 “티토의 정원”을 다시 찾았으나 늑대인간 카사 왕이 2백의 병사와 진을 치고 있어 30명의 부하와 함께였기에 공격을 못하고 철수했다는 칸의 고백이 있다. 필자도 책을 읽어가며 궁금해하던 부분인데 다쉬티가 그의 고백을 듣고 미소짓는 장면에서는 나도 감정이입 되어 다쉬티와 함께 기뻤고, 증폭되었던 의구심이 해소되며 카타르시스마저 느낄 수 있었다. 동화 또는 소설의 순기능을 간만에 접해본 것이다.

 “밤을 이겨 내고 나니, 어느 쪽으로 결정난다 해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듯했다.”는 다쉬티의 말에서 작가 섀넌 헤일의 글 쓴 의도가 문득 환기되었다. 삶의 각기 다른 과정을 통했겠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해 보았고 느껴보았던 느낌들이 “다쉬티”의 일기를 통해 독자의 동조를 얻는 언어로써 풀어내진다. 고요하고 편안한 글쓰기 흐름에도 경이로운 반전과 색다른 요소들의 퓨전적 통일이 있고, 이는 쉬운 언어로써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긴다. “다리가 세 개밖에 남지 않은 귀뚜라미처럼 불쌍한 처지”에 있는 아픈 사람들에게 “곧 지나가리라”는 마음가짐으로 위기를 다스리고 밤을 이겨내라는 작가의 위로가 담긴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유목민은 어떤 힘든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는다.”는 다쉬티의 말에서 생각이 꼬리를 문다. 라틴어로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란 신조어가 생각난 때문이다. “노블레스 노마드”는 “귀족적 유목민”이란 뜻으로 요새 많이 통용되는 단어이다. 이들은 겉치레 문화를 거부하고 대신 자신이 하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경험적인 일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노블레스 노마드들은 허례허식의 장신구보다는 해외여행, 레져, 공연관람 등 자신의 경험을 풍족케 해주는 활동에 지출을 늘리는 등 경험을 중시하고 적극적, 진취적인 현대인을 일컫는 대명사이다. 작가 섀넌 헤일이 “소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임금님과 샤렌 공주 대신, “경험”을 중시하고 배워나가는 적극적인 다쉬티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를 현대인인 우리 “노블레스 노마드”들은 곰곰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우리 독자들은 책을 읽어가며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배우기 싫어해 제 것조차 빼앗기고 마는 샤렌공주를 현실교사로 삼아 다시 한번 “잘 살아감”에 대한 의지를 다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작가의 마지막 교훈으로 적어본다.

미처 위 글에 다 언급하지 못한 교훈들이 아직도 책의 곳곳에 남아 독자들이 읽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혀를 내두를만큼 섬세한 묘사와 기발한 발상 그리고 그 재치있는 비유들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일기형식의 기록에 활기를 덧입혀 놓았다는 느낌이 강한 여운으로 남는다. 특히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림형제의 오리지널 이야기 「마렌공주」의 마지막 노래를 아이들이 똑같이 탑 밖을 돌며 부르는 것은 같이 썼으되, 어쩜 그리 희극적으로 대비시켰는지 작가의 무한 상상력에 감동마저 받았다.

한편, 아름답고 희망찬 긍정소설「프린세스의 천일책」이야기를 뒤집어 잔혹한 자기성찰과 자기관리, 반성유도에의 글로도 볼 수 있지는 않은가 자문해 보았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다쉬티는 평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떠돌이 유목민에서 공주님의 몸종으로 신분이 격상된 터라 거기에 만족하고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에 반해 샤렌 공주는 누리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죽음에의 공포를 생각하며 부친에게 배신당한 상태에서 장기 감금까지 당한 상태가 아니던가 말이다. 이쯤되면 누구나 괴로워하고 의욕을 잃게 마련이지 않을까……

한켠으로 드는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겨울날의 낮잠같은 향기나는” 소설을 여름의 복판에 만나 잠시나마 열대야를 잊었다는 해피엔드로 총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