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빌라 아말리아 (문학과 지성사)

* 사프칼 키냐르 (송의경 옮김)

 

 섬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듬직하고, 마술적이다. 그녀는 죽음에서 도망쳤다. 어머니에게서 도망쳤다. 조르주에게서 도망쳤다. 아직은 다소 불편한 집이긴 해도 입주했다. 스웨터를 한두 장 꿰어 입고 테라스에 나가, 여명에 앞선 회색빛 어둠 속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시커먼 작은 소나무 뒤편으로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았다. 최초의 빛을, 때로는 연한 금빛 햇살을, 때로는 궁수(弓手)의 머리칼처럼 하얀 햇살을.

 그리고 나서 최초의 푸른빛을.

 그러고 나서 바다에서 빠져나와 난폭하고 잽싸게 가차 없이 솟구치는 빛을.

-p.183

 

 안락의자에 퍼질러 앉는 기쁨, 담배 한 대를 맛있게 빨려 지그시 눈을 감는 기쁨, 그렇다고 누가 고함을 지르거나, 멀리서 웅성대거나, 다가오거나, 말을 걸거나, 날씨, 하루, 흐르는 시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거나, 괴롭히는 이가 아무도 없는 삶의 기쁨을 다시 누리게 되었다.

-p.184

 

 잎사귀, 꽃, 화분, 찻잔, 탁자, 나뭇가지 들이 테라스에서 수정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콩포티에, 람캥, 짝이 안 맞는 찾잔 들을 쟁반에 담아가지고 밖으로 나가 요기를 했다.

 나폴리 만의 빛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빛이리라. 멀리서 끊임없이 반짝이는 작은 파도, 빛의 물결, 소나기가 내리면 빗줄기의 삽질로 갈색과 검은색의 짧은 파도처럼 다시 갈아엎어져 싱싱해지는 정원의 흙, 이 모두가 물 냄새를 풍겼고 물과 흡사했다.

 그녀는 바다 한가운데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관에 정말로 애착을 느꼈다. 그래서 자연의 한 조각을 정성껏 가꾸었다. 그곳에서 자라는 생명, 그곳으로 흘러드는 생명, 그곳에서 번식하는 생명을 노심초사하며 돌보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한밤중에도 다시 일어났다. 혀 모양의 땅, 좁고 길다란 빌라를 질투가 날 정도로 관리했다. 빌라의 가장자리를 꽃으로 장식하고 화산의 암벽을 씻어냈다. 그녀는 빌라의 문마다, 창문마다, 계단마다, 구석마다 애정을 느꼈다.

-p.185~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