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권에는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순이 창작된 연대순이기도 한데, <뤼시스트라테>(BC 411),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 Thesmophoriazousai>(BC 411), <개구리 Batrachoi>(BC 405), <여인들의 민회 Ekklesiazousai>(BC 392), <부의 신 Ploutos>(BC 388)이 그것이다. 무려 2500여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당시의 시대 배경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놓치는 것이 있다. 사람이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이지만, 그곳이 어디이고(공간 배경), 그 때가 언제인지(시간 배경)은 반드시 점검해야 제대로 살피게 된다. 그것이 작가의 창작이며 허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해도.  

기원전 415년 시칠리아 원정에 나선 아테네는 기원전 413년에 시라쿠사이 군에 참패한다. 기원전 412년에는 구테타를 통해 아테네에 과두정이 들어서지만 다음해에 붕괴된다. '군대를 해산하는 여자'라는 뜻이 <뤼시스트라테>와 역시 여인들이 주역이며 주도권을 쥐고 있는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 Thesmophoriazousai>이 기원전 411년에 창작되어 무대에 오른다. 특히,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은 축제에 모인 여인들이 비극 작품에서 여인들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에우리피데스를 소환하여 처벌하려 한다.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5?~405?)는 당시 74세의 노인이고(실제로), 그가 도움을 요청하는 후배 비극작가 아가톤(기원전445?~399년?)은 극이 상연 당시 34살 정도이다. 기원전 399년은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가 사형선고를 받고 세상을 뜨는 해이기도 하다. 플라톤(기원전 427년~347년)은 당시 16세가량의 소년이었다. 기원전 423년에 소크라테스를 조롱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이 공연되었다는 점에서 당대를 살았던 인물들이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들을 직접 봤거나 예의 주시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1]  아리스토파네스(기원전 445년~385년)는 34살로 아가촌과 거의 같은 나이이다.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은 에우리피데스와 그의 비극작품이 패러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극 자체가 일종의 문학평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2집에 수록된 <개구리>(에도 에우리피데스와 아이스퀼로스, 비극을 주관하는 신 디오니소스가 등장한다.)와 비교해서 살필만한 작품이다. 또한 무능한 남자들에게서 국정을 인수받아 남자들 대신에 권력을 잡는다는 이야기인, <여인들의 민회 Ekklesiazousai>(BC 392)와 함께 여성이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은 두루 비교되어 살펴볼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된다. 또한 플라톤의 <국가>가 국가를 수호하는 데에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의무를 이행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당대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정도의 남녀평등을 담고 있으며, 철인정치를 정치를 주장하며 시인은 추방되거나 철저한 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짓는 문학평론에 해당하는 담론들을 포함하고 있다. 정리하면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2권은 플라톤의 <국가>를 이해하는데, 다시 플라톤의 <국가>는 이 책에 수록된 아리스토파네스의 후기작품들을 이해하는데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은 자신이 쓴 대화록이지만 스승 소크라테스의 말씀으로 전환하여 <국가>를 집필했다. 70살 노인인 소크라테스가 아테나이 시민들로부터 사형을 선고받는 그 법정에서, 소크레테스가 고액과외를 일삼는 소피스트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아리스토파네스의 비극 <구름>이 일종의 증거(아닌 증거로)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희극전집' 2권에 수록된 작품들은 뜻하지 않게 작품 외적으로도 자료적인 가치를 갖게 된 셈이다.   

'테스모포리아 축제'(Thesmophoria)는 곡물과 농업의 신인 데메테르 테스모포로스(Demeter thesmophros: 입법자 데메테르)를 기리는 축제로 지금의 10월경 아테나이에서 사흘간 계속되었다. 소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우리피데스는 아가톤에게 부탁하나 거절당하고, 에우리피데스의 인척이 대신 나선다. 수염을 깎고 음모를 그을리고 드레스를 입고 브래지어까지 착용한 상태로 여인들의 축제 현장으로 잠입하는 것이다. 여인들은 에우리피데스를 성토하느라 무지 바쁜 상태이다. 일행 중에 있던 여자 같은 남자인 클레이스테네스가 여인들에게 에우리피데스가 첩자 보냈다고 알리고, 인척은 여인들에 발각되어 수모를 당한다. 인척은 에우리피데스에게 구조를 요청하고, 나는 이 대목부터를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으로 읽었다. 에우리피데스가 자신의 작품을 활용해서 구조를 시도하는 대목이 재밌다. 특히, 자신의 작품은  <헬레네>(기원전 412년 디오뉘소스 제 우승작품)를 흉내내어 에우리피데스 자신이 메넬라오스로 변장하고 등장하지만 구출에는 실패한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한다. 이란의 성난 시위대는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을 점령해 직원들을 인질로 삼는데.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미국 CIA는 요원이 투입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기발하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힌트를 얻은 요원 토니는 <아르고>라는 제목의 가짜 SF 영화를 만들어내고.. 로케이션 장소 헌팅이라는 명목으로 이란에 잠입, 인질을 탈출시킨다. 작년(2012년) 10월 말경에 개봉하여 국내 시장에서는 별로 흥행하지 못하고 며칠 만에 극장에서 사라진 이 영화는 30여년 전에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그런데 올해의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이 영화가 휩쓸었다. 해서 재조명하는 기사가 나오고,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반이란 영화를 만들어 상을 주는 것은 정치와 예술이 뒤섞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격분하고 있다. 이아손이 그리고 메데이아가 등장하는 <아르고 호 선원들의 이야기>와 무슨 연관이 있나 해서, 개봉 당시에 이 영화를 본 필자로서는 어쟀거나 극장에서 수상작을 보았다는 점에서 지금 생각하면서 다행스럽기는 한데, 실제 발상이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지금 이야기하는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의 극적 상황과 유사한 점이 있는 듯하여, 굳이 영화 이야기를 하필이면 지금 여기에 삽입해 보았다. 가짜 영화 <아르고>의 (가짜) 감독과 자신의 작품 속 메멜라오스로 분장한 에우리피데스, 두 사람과 두 작품을 그리고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영화 <아르고>와 희극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의 극정 상황을 비교하면 재밌다. 발상은 늘 자신도 모르게 포착되기 마련이다. 이상으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2가 가지는 문학사적인 중요지점을 짚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