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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으로 <신들의 계보>에 수록된 헤시오도스의 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네 편의 책(신들의계보/일과 날/헤라클레스의 방패/여인들의 목록) 가운데 메인에 해당하는 <신들의 계보>의 내용을 일부를 만나보기로 하자. 우주의 최초 지배자인 우라노스가 그의 아들 크로노스에 의해 지배권을 박탈당하고 쫓겨나는 이야기, 그리고 그런 크로노스가 아들 제우스에게 지배권을 넘겨주기까지의 사연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이아는 맨 먼저 자신과 대등한(50) 별 많은 우라노스를 낳아(126행~)
자신의 주위를 완전히 감싸도록 함으로써 우라노스가
영원토록 축복받은 신들에게 안전한 거처가 되게 했다.
가이아는 또 여신들의, 산골짜기에 사는 요정들의
즐거운 처소인 긴 산(山)들을 낳았다.
가이아는 또 거칠게 파도치는 추수할 수 없는 폰토스를 낳았다.
사랑으로 교합하지도 않고, 그러나 그 뒤 가이아는/우라노스와 누워 깊숙이 소용돌이치는 오케아노스,/코이오스, 크레이오스, 휘페리온, 테이아,/이아페토스, 레아, 테미스, 므네모쉬네,/
황금 머리띠의 포이베, 사랑스런 테튀스를 낳았다.
그들 다음 음모를 꾸미는 크로노스가 막내로 태어났으니,
가장 무서운 이 아이는 건장한 아버지를 싫어했다.
...

서사시는 이처럼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나열한다. 퀴클롭스들을, '강력하고 드세고/사람들이 그 이름을 말하기를 꺼리는 세 아들' 콧토스, 브리아레오스, 귀게스 등등. 이처럼 생김새도 독특하려니와 그 자식들이 가진 힘들은 강력한 것들이었다. 해서 우라노스는 마음이 불안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이아와 우라노스에게서 태어난 자들은 모두,

 

가장 무서운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아버지는(155행~  )
처음부터 그들을 싫어했다. 그들이 태어나는 족족 우라노스는
모조리 가이아의 깊숙한 곳에다 감추고는 그들이 햇빛 속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악행을 즐기면서.

 

태어난 자식들이 타르타로스라는 지하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니 가장 속상한 사람은 어머니인 가이아이다. 그녀는 괴로워하다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데, 곧바로 아마다스(신들의 금속)를 만들어 이것으로 큰 낫 하나를 제작하여 자식들에게 보여주며, 결연한 마음으로 얘기한다.

 

"나와 사악한 아버지의 자식들이여, 너희들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면 우리는 너희 아버지의 사악하고 수치스런 짓을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먼저 못된 짓을 꾀했으니까."

 

다들 나서지 않는데, 크로노스가 용기를 내어 대답한다.

 

"어머니 그 일은 제가 맡아 완수할게요.
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우리 아버지가 두렵지 않아요.
그분이 먼저 못된 짓을 꾀했으니까요."

 

아무리 어머니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친부에게 대항하는 일에 나서는 막내아들 크로노스, 세상 물정을 몰라서 더 용감한 것인가! 어쨌거나 가이아는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은밀히 매복시키고 이빨이 날카로운 낫을 손에 쥐어주며 그에게 음모를 자세히 일러주었다.

 

거대한 우라노스가 밤을 끌어올리며 다가와 사랑을 바라고
사방으로 뻗으며 가이아 위에 자신을 펼치자,
그의 아들이 매복처에서 왼손을 내밀어
오른손에 쥐고 있던 길고 이빨이 날카로운 거대한 낫으로
친아버지의 남근을 재빨이 자르더니
아무 데나 날아가라고 등 뒤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무익하게 그의 손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기서 떨어지는 핏방울들을/가이아가 모두 받아 해가 다 차자/강력한 복수의 여신들과, 무구들을 번쩍이며/손에 긴 창(槍)을 든 거대한 기가스들과,/끝없는 대지 위에서 멜리아들이라고 불리는 요정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참혹하게 친부를 그 아들이 거세하는 와중에 그 현장에서, 아내인 가이아의 행동은 참 알뜰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한편 남근은 처음에 크로노스가 아마다스의 낫으로 잘라
그것을 육지에서 파도치는 바닷속으로 던지자
오랫동안 그렇게 파도 위를 떠다녔다.
그러다가 그 주위로 불사(不死)의 살점에서 흰 거품이 일더니
그 안에서 한 소녀가 자라났다. 그녀는 처음에 신성한 퀴테라로
다가갔다가 그 뒤 그곳으로부터 바닷물로 둘러싸인 퀴프로스로 갔다.

 

그 유명한 아프로디테(일명 비너스)는 이렇게 탄생한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아프로디테의 출생의 사연은 이러하다. 이 여신에 대한 얘기는 다른 데서 살피기로 하고, 이제 우주는 크로노스가 지배하게 된다.

 

레아는 크로노스에게 눌려 영광스런 자식들을 낳았으니(453행)
헤스티아, 데메테르, 황금 샌들의 헤라,
지하 집에서 사는 무자비한 마음의
강력한 하데스, 굉음을 울리며 대지를 흔드는 이(포세이돈),
그부의 청둥 아래 넓은 대지가 떠는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
지략이 뛰어나신 제우스가 그들이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자신이 친부를 거세하고, 지배권을 잡았지만 자기 자식 가운데 꼭 그처럼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 있다는 것이 늘 두렵고, 근심의 싹을 잘라내버리기로 했다. 하여,

 

위대한 크로노스는 어머니의 신성한 자궁에서(459행~ )
그녀의 무릎에 이르는 족족 아이들을 집어삼켰으니,
당당한 우라노스의 자손들 가운데 자기 말고 다른 자는 어느 누구도
불사신 사이에서 왕의 명예를 누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
그래서 그는 눈먼 파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고 있다가
자식 자식들을 집어삼켰다. 레아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레아는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 제우스를 낳게 되었을 때,
사랑하는 부모님인 가이와와 별 많은 우라노스에게 간청했다.
몰래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모의 도움으로 레아는 음모를 꾸민다. 막내 제우스를 해산할 무렵의 얘기이다.

 

..강력한 가이아는 넓은 크레테에서(479행~ )
약육하고 돌보기 위해 그녀에게서 그분(제우스)을 받았다.
그곳으로 레아는 그분을 안고 재빠른 밤의 어둠을 헤치고
나아갔고, 뤽토스에 달을 때까지 쉬지 않았다.
그리고 레아는 그분을 손에 들고 가파른 동굴에, 신성한 대지의
깊숙한 곳에, 숲이 우거진 아이가이온 산에 숨겼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큰 돌덩이 하나를 포대기에 싸서
강력한 주인이자 옛 신들의 왕인 우라노스의 아들(크로노스)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잡고 비정하게도/자신의 뱃속에 집어넣었고, 이제는 돌덩이 대신/자신이 이길 수 없는 아들이 무사히 남아 그 아들이/머지않아 힘과 완력으로 자기를 제압해 높은 자리에서 내쫓고/아들 자신은 불사신들을 다스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뒤 제우스의 용기와 눈부신 사지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때가 되었을 때 음모를 꾸미는 위대한 크로노스는 가이아의 교활한 조언에 속아, 

 

자기 아들의 힘과 계략에 패하여(495행~)
자기 자식들을 도로 게웠다.
먼저 그는 맨 나중에 삼켰던 돌덩이를 통해냈다.
제우스는 그 돌을 파르낫소스 산 골짜기에 있는
신성한 퓌토에서 길이 넓은 대지에 박아 앞으로 기념물이
되고 필명의 인간들에게 경이로운 물건이 되게 하셨다.

 

이렇게 제우스는 신들과 인간들의 지배자로서 등극할 단초를 이렇게 마련했다. 아테말리아란 염소 또는 요정의 젖을 먹고 자란 제우스는 오케아노스의 딸로 자신의 첫째 아내가 된 메티스를 설득하여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타 먹이게 하여 크로노스가 삼틴 돌멩이와 자식들을 토하게 했던 것. 그리고 크로모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우주의 지배자가 되었듯이, 그는 이들과 합세하여 '티탄신족'과의 전쟁을 일으며 자신의 강력한 무기인 천둥번개에 힘입어 10년 만에 힘겨운 승리를 거둔다.
크로노스는 티탄 신족의 한 명으로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막내아들이다. 자신의 누이 레아와 결혼하여, 헤스티나,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을 낳고 마지막으로 제우스를 낳았으니,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막내아들인 것이다. 이들 겁없고 용감한 막내아들의 실행에 의해 우주와 인간세상의 지배권이 바뀌었다. '불멸'의 신들이기에 아들이 아버지를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고는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없다. 

이상은 <신들의 계보>의 일부를 인용하여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신들의 계보는 1020행이라는 길지 않은 분량의 서사시다. 이렇듯 간명하게 헤시오도스는 그리스 신들의 족보를 정리하였다. 그러기에 해서 배보다 더 큰 배꼽처럼 자세한 주석이 필요하고, 숱한 상상력과 그 결과물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마르지 않은 샘이 되었다. 그렇게 숱한 저작들, 문학작품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호메로스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됫세이아>를 통해 당대에 구전(口傳)되던 신들의 이야기를 플롯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었다면,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헤시오도스는 복잡한 신들의 족보를 정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서로 같은 신들을 다루면서도 글의 성격과 쓰임이 아주 다른 것이다. 누가 누구의 저작을 참고했다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다. 가령, <일리아스>를 제대로 읽기 위한 참고서가 <신들의 계보>라고 말할 수 있고, <신들의 계보>를 밑그림 삼아 <일리아스>의 스토리가 완성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얘기는 결코 성립할 수 없기도 하다. 분량 면에서도 <신들의 계보>는 24권으로 되어 있는 <일리아스> 1권 지나지 않는 분량으로 신들의 복잡한 계보를 말끔하게 정리해놓았다는 점에서, 그 역할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크로노스가 있다. 크로노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데, 특히 자식들까지 집어삼킴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매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고 한다. 권력의 속성이 이렇듯 그 옛날 그리스의 신들의 세계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헤시오도스의, 신들과 인간들은 한 뿌리에서 태어났다는 혜안이 빛나는 순간이다. 또한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크로노스는 시간을 상징하는 시간의 신이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한번 우리 곁에 온 시간은 곧바로 사라지고 만다.

시간을 나타내는 그리스어가 몇 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크로노스(chronos)다. 크로노스로 표현된 시간은 보통의 (물리적) 시간인데, 크로노스는 '시간의 냉혹한 아버지'라고 부르는 크로노스와 동일시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아들인 크로노스는 누이인 레아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지배권을 가질 수 있는 후계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태어나는 자식들을 삼켜버린다. 크로노스의 자식들 가운데 레아가 살려낸 막내인 제우스만 목숨을 부지한다. 장성한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제압하고 올림포스에서 인간의 운명을 다스리게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간명한데, 왜 이렇듯 길게, 얘기하느냐! 어원만 간단하게 아는 것과, 이야기의 원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또 하나, 이러한 원전의 이야기를 원천으로 삼아, 끊임없이 덧대어지고 해석되고 스토리로 구축된 이야기들과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조각과 회화에서 크로노스 곁에는 모래시계가 있는데, 또 다른 상징물로 낫이 있다. 

자신이 친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지배권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도구다. 옮긴이 천병희 선생은 앞서 펴낸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가 등장하는 사진에 다음과 같이 설명을 덧붙인다.
"..크로노스(Kronos)란 이름이 '시간'이란 뜻의 크로모스(Chronos)와 발음이 같고, 또 크로노스가 이탈리아 농업의 신이었던 사투르누스(Saturnus; 그들은 사투르누스란 이름이 '씨 부리기'란 뜻의 라틴어 satus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와 동일시 되면서 그가 남근을 벨 때 사용했던 낫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베어서 거두어들이는 죽음의 낫으로 여겨졌다."라고. 여기에서의 낫은 죽음의 낫이지만, 때가 되면 추수를 하는 것도 낫으로 하는 일이다. 크로노스가 농업의 신으로 여겨진 단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들의 계보에서의 크로노스 신화와는 또 다른 얘기가 이 책에서 수록된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일과 날>에서 전해진다. 이에 따르면 크로노스는 타르타로스에 유폐된 뒤 제우스의 용서를 받고 풀려났다. 그리고 세계의 서쪽 끝으로 보내져 그곳의 통치자가 되는데, 태양이 지는 이곳은 근심과 고뇌 없는 '황금빛 인간족'이 풍요를 누리며 사는, 실로 낙원과도 같은 시대이다.

헤시오도스가 묘사한 이 이야기가 훗날 로마인들에게 전해졌고, 로마의 시인들은 이 시기를 황금시대(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의 '네 시대' 중 첫번째 시대가)라고 했다. 그런데, 오비디우스는 기원전 43년,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시대'라 불리는 때에 태어났다. <신들의 계보>에 근거하여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결국 '시간'이란 뜻의 크로노스와 때가 되면 거두어들이는 낫이 결합되어 낫은 시간이 되면 모든 것을 베어 들이는 '시간의 칼날'로 해석되곤 했다.
한번 흐르는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런데,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가 삼켜버린 형제재매들을 토해내게 만들었다. 물리적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과거를 기억하고,그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 좋은 기억도 있고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쓰라린 기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감하게 지난 시간들을 꺼내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아름다운 추억에서는 위안을 받는다면, 나의 시간을 현재와 미래로 가는 내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지 않을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보듯이, 그렇게 아버지가 토해냄으로써 다시 태어난 신들끼리 불협화음이 상당하다. 트로이 전선에서 어느 편에 섰느냐에 따라 어떤 신은 수호신이 되고, 어떤 신의 상대편의 수호신이므로 아군에게는 적대적인 신이 된다. 지난 시간을 되살리는 우리의 기억도 그런 것이 아닐까, 너무 아름다운 추억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힘든 기억들도 떠올리며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