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담을 뮤지컬 스무 편을 고르는 일부터 고역이었다.
뮤지컬은 저울에 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흔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떤 뮤지컬은 몸을 지나갈 때 흔적을 남긴다.
드라마와 음악, 정서가 끈적한 덩어리가 되어 마음에 가라앉고,
시간이 흘러도 휘저으면 떠오른다.
그리고 어질하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책에 담은 스무 편은 내게
그 흔적이 진한 뮤지컬들이라고 하면 정직할 것이다."

 

이상은 이 책의 프롤로그 <나를 중독시킨 뮤지컬에 대한 고백>의 일부이다. 6면의 1행에서 7행까지에 해당한다. 표4(뒷표지)에도 바로 인용한 그대로 프롤로그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가 누구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책이 완성되었는지, 무엇보다 본문을 읽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미처 공연장에서 만나지 못한 뮤지컬은 테마곡 몇곡이라도 OST를 듣는 등 책읽기는 이미 끝났지만, 책 때문에 길 위에 서서 뮤지컬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책은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으로 상품의 일종인데, 문화상품에 속하고 근래에 지겹게도 듣는 콘텐츠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제목부터 표지(앞면), 표4에 해당하는 부분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일단 독자의 눈길을 잡는데 성공했다면, 이 콘텐츠가 담고 있는 것이 뭔가를 간명하면서도 와 닿게 어필해야 하는 것이 표4의 카피다.

국내 유력 일간지의 공연전문기자로 8년이면, 그것도 뮤지컬 관련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이니, 추천사를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저자와 출판사는 추천사 하나 없이, 저자의 서문의 일부만을 표4면에 소개하고 있는데, 그 당당함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서문에 대해서 말하자면 특히, 소설의 경우 작가의 말 자체도 소설의 일부라고 할 만큼 그 진정성을 의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넓게 보아 '에세이'-이 부분이 중요하다-의 범주에 드는 글모음을 책으로 펴내면서 서문에서 밝히는 내용은 책의 내용을 과대 포장하거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버'할 여지가 많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인용한 부분은 그저 서문의 한 단락이지만, 이 책 본문 어디 페이지를 펼쳐도 이처럼 함축적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 글맛을 느낄 수 있다. 이상은 책을 읽고서 한참 지난 후에야 표4 위의 인용부분을 읽고서 하는 얘기이다.

해서 나는 한 편의 시를 분석하는 기분으로, 인용 부분을 텍스트 삼아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소감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괄호 안에 든 내용이 이 책에 대한 리뷰가 되는 셈이다.

 

[1]이 책에 담을 뮤지컬 스무 편을 고르는 일부터 고역이었다.
뮤지컬은 저울에 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흔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저자는 <레 미제라블>에 대한 글에서 다산 정약용을 인용한다. "천하에는 두 개의 저울이 있다."는. 시비(是非)의 저울과 이해(利害)의 저울 말이다. 그리고 네 가지의 경우의 수를 제시한다. 1.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 2.옮은 것을 지키다 해로움을 입는 것, 3.그릇된 것을 따르다 이로움을 얻는 것, 4.그릇된 것을 따르다 해로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책이 2,3권 속편으로 이어지는 행운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영화만이 아니라 속편이 첫작품보다 나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20편의 뮤지컬을 골라내는 것은 저자의 취향에 따른 것이 우선이겠으나, '고역'일 수밖에 없음은, 그가 다루는 뮤지컬이 그러하듯 독자(관객)의 '니드'를 계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위 4가지가 20편을 선별하는 저울의 눈금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라고 하는 것은 뮤지컬 자체가 철저한 쇼비지니스라는 점을 상기할 때이다. 감동을 빚어내는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그 이상, 플러스 알파를 창조해내야 하는 뮤지컬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저자는 말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다산이 제시한 저울에 스스로의 저작물을 올려서 체크하는 과정이 왜 없었겠는가, 거기에 더해진 '알파'가 있느냐 없느냐가 이 책읽기의 포인트가 된다.)

[2]어떤 뮤지컬은 몸을 지나갈 때 흔적을 남긴다.
드라마와 음악, 정서가 끈적한 덩어리가 되어 마음에 가라앉고,
(왜 하필 흔적이 남기는 데가 몸일까? 감동의 순간,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순간의 몸서리.. 아마도 그것을 말하는 것일까? 뮤지컬은 드라마와 노래(음악), 몸의 언어인 춤이 기본 삼박자를 이루는 공연예술이다. 노래(음악)의 꼬리를 물고 다음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스토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관객의 눈과 귀가 쉴 틈을 주지 않으며,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몸에 흔적을 남기는 어떤 뮤지컬이 좋은 뮤지컬이고, 저자에게 20편을 선정하는 기준은 '어떤'에 있다.)

[3]시간이 흘러도 휘저으면 떠오른다.
그리고 어질하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준다.
(미스 사이공의 '해와 달' 노트르담 드 파이의 '아베마리아'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라디오에서 음반매장에서 우연찮게 들려오는 뮤지컬 한 대목은 공연장에서의 감동의 순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이 순간을 현기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음반이 출시될 때에는 거기에 뮤직비디오가 따라 제작되는데, 뮤지컬 음악 한 소절이 떠올리게 하는 감동의 순간은 뮤직비디오의 작위적인 연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동감으로 늘 되살아난다. 오죽 하면 저자는 '중독'이라고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겠는가)

[4]그러므로 이 책에 담은 스무 편은 내게
그 흔적이 진한 뮤지컬들이라고 하면 정직할 것이다.

(괜찮은데, 그저 그래, 좋아, 별로야!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관람석을 탈출하는 이들은 이 짧은 한마디로 거의 모든 감상을 표현한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눈빛만 봐도 그 작품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왜 좋은지를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공연전문기자의 일이다. 저작 박돈규의 이 책은 자신이 속한 일간지에도 소개했을 자신이 선별한 그 뮤지컬에 대한 기사를 기초로 삼았겠으나, 철저하게 기존의 글을 해체한 상태에서 새롭게 쓰기를 시작한 듯하다. '취재후'에 해당하는 에피소드, 살아가는 이야기,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아빠로서 딸에게 하고 싶은 말-맘마미아-,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최근에 씌여진 주옥같은 시인들의 싯구들, 무대 뒷편과 객석을 전방위로 오가는 다채로운 조망 등이 잘 어우러져, 리뷰는 어느덧 뮤지컬기행수필이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공연으로 본 작품은 작품대로, 아직 공연으로 접하지 못한 작품은 그러한 작품대로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공감하는 이와 얘기하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제목처럼 독자인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블라블라블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