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길의 어머니는 해녀였다.
한 겨울 칼바람 속에서 바다로 들어가 딴 해초나 조개류며 성게, 멍게 , 해삼과 물고기를 잡아냈다.
그걸 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세길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입고 갈 옷을 샀다.
문제는 양말이었는데 하필이면 누나가 신는 빨간색이라는 것이었다.
흰 고무신과 바짓단 사이로 내다보이는 세상이 뭐가 그리 궁금한지 자꾸 빨간 얼굴을 내밀었다.

민현의 어머니는 열두 살의 어린나이에 일본인집에서 잔신부름을 하며 살게 되었다.
해방후 집도 절도 없고 의지할데도 의지할 사람도 없자 그녀는 절망감에 바닷가에서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전부터 처녀을 눈여겨보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일본인들이 포경선을 탔다.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만으로도 포경선의 포수 노릇을 너끈히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해방이 찾아왔다. 남자는 고래잡이배가 다시 뜨기를 기다리며 매일 같이 바닷가에 나왔다.
처녀를 만난것이었다.

 소설 중간중간 당시에 일어났던 사건, 사고 등을 보여줘서 그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식때 인형같은 민현에게 매료되어 오십 줄의 사내가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세길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할 정도로 바보같았다.

민현의 어머니는 세길에게는 은인이었다.
세길이 사회인으로서  역활을 다할 수 있도록 바다속에서 젓을 먹여주고 바닷물의 저항을 덜 받게 수면으로 들어올려준 어미 고래 같았다.
민현에게는 보통의 엄마 역할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세길이 민현의 마지막 연인이 된 데는 단 한가지 이유가 있을 뿐이다.
그녀의 전남편, 남자, 연인, 숭배자, 그저 하룻밤 잔 상대, 그 누구는 질투하지 않았다.
만약 질투를 했다면 진즉에 말라 죽었거나 민현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언젠가 세길은 평범하고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며 생긴 것까지 그녀의 상대가 되기에 어울리지 않는 나를 좋아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나를 해치지 않고 독점하거나 내게서 무엇을 빼앗아가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나를 좋아하는 느낌을 준 건 네가 처음이야."
그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나를 이용하고 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을 얻기위해. 행복을 느끼기위해. 사랑을 누리기 위해.
안다. 나는 그게 좋다.
나또한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얻기 때문이다. 편안하다. 이건 내가 원하고 원해 왔던 것이다.
언젠가 민현이 온전히 내게 돌아올 것임을 아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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